매번 성황인 명절대피소, 이번에도 너로 정했다

[요즘 것들의 명절] 살롱 문화 열풍... 청년들은 동네서점에 갑니다

등록 2018.09.21 18:09수정 2018.11.0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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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중심의 명절 문화를 21세기에 걸맞게 직접 고치고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것들의 명절'에서 그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돌아오는 추석, 나는 친척집에 가는 대신 책 읽는 바(Bar)를 연다. 연휴 기간에는 손님이 올 것 같지 않아 문을 닫을 심산이었으나 추석에도 가게에 오고 싶다는 문의가 심심찮게 왔다. 낮섬(필자가 운영하는 가게 이름)마저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단골의 협박 섞인 애원도 추석 연휴 오픈에 한몫 했다.

알고 보니 주변에도 그런 가게들이 꽤 있었다. 특히 살롱 문화 열풍의 중심지인 동네 서점들은 이번 연휴에도 영업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성산동 골목에 자리한 국내 문학 전문 서점 '책방서로'는 추석 당일을 제외한 나머지 연휴 동안 문을 열 계획이다. 이곳은 달마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여는데, 9월 말에도 '애주가의 결심, 은모든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책방서로 사장은 "평일보다 의외로 추석과 같은 명절에 사람들이 온다"고 말했다.
  

성산동 책방 서로 ⓒ 박초롱

 
이대역 근처에 있는 '퇴근길책한잔'은 올해도 '명절대피소'를 운영한다. 독립출판 전문 서점으로 유명세를 탄 퇴근길책한잔은 벌써 몇 해째 명절에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서점 문을 연다. 잔소리 free, 눈칫밥 free, 커플 free인 '3 free zone'으로 운영된다. 취업은 언제 하니, 결혼은 안 할 거니라는 소리를 들으며 친척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프리 존'이란다. 퇴근길책한잔의 명절대피소는 매번 성황이다.
  

염리동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 ⓒ 퇴근길책한잔

 
왜 명절마다 청년들은 친척집 대신 '피난처'를 찾는 걸까? 피가 섞인 가족들을 만나는 대신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살롱 찾는 청년들

20, 3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살롱 문화가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여러 곳에서 접했다. 독서나 글쓰기 모임, 강연이나 원데이클래스 등 간단하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함께 공유하는 문화다.

회원 수만 3천 명이 넘는다는 독서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를 비롯해 회원제 프라이빗 살롱 '취향관'도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2~3년 전부터 급속하게 불어난 동네 서점 역시 살롱 문화의 거점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사실 뉴스를 통해 접하지 않아도 살롱 문화는 직접 체감하고 있다. 낮섬은 책 읽는 술집이지만 의외로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모르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주인장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손님끼리 알아서 책모임을 만들었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2주에 한 번 책을 소개하고 주제에 대해 토론한다. 뜻하지 않게 싱글들을 위한 파티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음악을 소개하는 이벤트가 생기기도 한다.
 

딴짓의 문화 공간 '틈' ⓒ 박초롱

 
필자는 책 있는 술집과 더불어 독립출판 '딴짓'에도 참여하고 있다. '딴짓'에서는 문화공간 '틈'을 운영 중인데, 이곳에서는 매월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주제를 강연과 토론 형식으로 풀어내는 행사를 연다.

매번 모이는 사람은 다르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여하는 살롱 마니아도 있다. 이런 '프로참석러'들이 오면 아는 체 인사를 하곤 하지만 그 사람의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알지는 못한다.
  
살롱 문화의 핵심은 '프라이버시' 존중이다. 책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의 직업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재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비전은 있는지를 질문하는 경우도 매우 적다. 묻더라도 상대가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보이면 무례하게 더 묻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살롱에 모이는 사람 간의 암묵적 예의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 가면 일 년 내내 그 흔한 '카톡' 한 번 주고받지 않았던 친척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내밀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은 안 할 거니?'
'사귀는 사람은 있니?'
'요새 돈은 잘 버니?'
'살이 왜 이렇게 쪘니?'


낯선 사람이 던졌다면 무례하다 생각할 법한 질문이지만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화를 낼 수도 없다. 가끔은 자식 자랑 경진대회가 열려 자녀들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런 도마 위에 올라온 자식들은 승자가 되든 패자가 되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먼 친척보다 말 잘 통하는 낯선 사람
   

책 읽는 술집 '낮섬' ⓒ 박초롱

 
물론 살롱에 모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의 인생이 서로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살롱에 모이는 청년들이 겉도는 이야기만 나누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가 더 수월해지듯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의외로 깊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방식의 삶을 꿈꾸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오는데다 관심 분야가 비슷해 말이 잘 통한다.

최근 낮섬의 책모임에서는 채식, 페미니즘, 난민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 전 낮섬에 온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연애나 직장문제 등 친구들끼리 하는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가볍고 이미지만 소비한다고 평하지만 모든 청년들이 가벼운 관계와 이미지 소비에만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책모임에 온 누군가가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면 모두가 성심성의껏 저마다의 생각을 들려준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것과 내 생각은 이렇다고 전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살롱 문화가 청년들에게 인기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관심 분야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업일치(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가 신화처럼 취급되고 모두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갈 수 없다 말하는 사회에서 실상 자신의 관심사와 하는 일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은 일터 안보다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처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세분화되고 다양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다움을 지키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혼자 있고 싶지는 않지만 내 일상을 침해받기는 싫다."


이런 고민을 가진 청년들이 살롱 문화의 중심이 되는 서점이나 문화공간을 찾는다. 올 추석. 은근하고 느슨한 연대를 원한다면 동네 서점에 가보면 어떨까? 의외로 먼 친척보다 말 잘 통하는 낯선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낮섬 #살롱 문화 #서점 #서로책방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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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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