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승리 경험, 여성청년 정치를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고은영x여세연의 제주도 푸른밤 ③] 더 많은 여성청년의 얼굴로, 더 많은 승리의 경험을 그릴 때

등록 2018.09.21 10:02수정 2018.09.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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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년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저하게 하는 것과 확신하게 하는 것이 가득한 이 정치판에 뛰어든 이, 여성최초 제주도지사 후보였던 고은영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활동가인 혜민과 연주가 함께 만났다.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또는 꿈꾸는 여성청년들의 사연을 받았고 이를 중심으로 고은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고은영x여세연의 제주도 푸른밤. 장장 5시간이 넘게 이어진 대화를 4회차 기사로 정리해보았다. 1, 4회차는 혜민, 2, 3회차는 연주가 작성하였으며 1회차씩 연달아 게시될 예정이다. -기자말

[이전 기사]
1회: 1톤 트럭에 오른 무일푼 후보,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
2회: "다음 선거에선 더 많은 고은영과 경쟁하고 싶어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고은영과의 인터뷰에 앞서 정치활동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여성청년들로부터 사연을 받았다. 지난 기사에서 여성 청년이 정치를 결심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면, 3회 기사에서는 우리가 가는 길이 맞다고 '확신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고은영이 제주에 이주하고 6.13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가 되기까지의 경험과 고민들을 사연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아재 정치' 타파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들

네 번째 사연 : "경남에 거주하는 여성입니다. 2018 지방선거에서 '나중에'와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아재 정치'에 분노했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도 뾰족한 수는 찾기 힘들 것 같아요. 아재 정치를 바꾸는 방법은 여성당 창당만이 답일까요? 고은영 후보처럼 경남도 후보를 만들고 모금을 해야 할까요?"

지난 기사에서 사연을 통해 한국 정치판에 다양한 여성 청년의 얼굴들이 부재하고, 청년이 정치를 하기에 불리한 구조임을 이야기했다. 위 사연 또한 '아재 정치'로 인한 힘든 상황의 답답함을 호소했고, 고은영은 이 사연에서 뿜어나오는 울분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한다. 기성정당에 얼마나 실망을 했으면 여성당을 창당하고 싶다고까지 할까 싶었다고.

"정당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에요. 여성의 삶을 담아내는 정당이 왜 우리나라에는 없는가. 당연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선거제도 개혁과 맞물려서 여성당 창당은 진짜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어요. 선거제도 개혁이 되면 여성당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당이 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정치적인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주체자들이 등장해야 하며, 정당은 그 목소리들의 집합이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여성 청년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고은영은 선거제도 개혁과 맞물릴 때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고은영 선거캠프 만원프로젝트. 시민들이 모은 만원으로 제주에서 여성청년 도지사 후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은영 선거캠프 만원프로젝트. 시민들이 모은 만원으로 제주에서 여성청년 도지사 후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녹색당
  
지방선거에서 고은영 선거캠프는 '만원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모금방식과 선거과정을 오픈하는 것은 어떻게 여성정치인을 발굴했고 키웠는지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 과정엔 시민경선을 치루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엽서를 주며 시민경선인단에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작업들도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한 발 딛게 할 수 있는 장치였어요.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정치혐오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성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치혐오로 당적을 갖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고 생각해요.


여성 청년, 정치신인들이 함께 해서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역사회에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해요. 어라, 경선을 하네? 다 무소속이네? 혹은 정당이 다르네? 저 테마를 들고 같이 나왔네? 시민들에게 보여주는거죠. 이번 지방선거에서 '구프'도 있었죠."


'구프'는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로, "대통령도 끌어내렸는데 내 동네라고 못 바꿀소냐"라며 동네에서 출마한 무소속 후보들의 모임이다. 기성 정당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정치적 실험이자 프로젝트인 것이다.

고은영은 새로운 정치적 시도를 두고 "중요한 건 어느 한쪽이 독식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 원칙을 세우고 가져가는 것"이라 짚었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비판하면서 더 다양한 목소리를 위한 정치판을 짜는 것, 그것이 아마 여성청년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의 성장은 지역에서 시작"

다섯 번째 사연 : "저는 곧 부산으로 이주할 예정입니다. 주민참여예산이나 마을사업과 같은 동네 정치를 해볼까 생각 중인데요. 고은영님은 새로운 동네에 가서 어떤 경로로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이주민이라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고은영은 제주에 왔을 당시 제주의 개발 광풍을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당 활동은 2016년에 서귀포 지역 모임으로 시작했고, 모임을 꾸려나가기 위한 모임지기가 돼 지역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당 운영위원회에 여성운영위원 비율이 부족했고, 지역모임에서 한 명씩 당연직으로 올라가게 되어 운영위원이 됐다. 당 활동을 하자마자 모임지기가 되고 운영위원이 된 것이다. 제비뽑기로 공동운영위원장이 되었고, 당내 활동에 깊숙이 몰입하면서 경선을 거쳐 지사 후보까지 되었다고 말한다. 이 모든 과정이 단 2년 만에 일어났다.

고은영은 '녹색당 한정 케이스'라며 본인이 겪은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했나에 대한 물음에 고은영은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지역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주민으로서 제주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했을 수 있으나 동네는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제가 이주민으로서 제주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부족할 수 있으나 우리 동네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두 번째는 동네정치를 시작하는 그 공간이 이주민에게도 패널티를 주지 않는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싸움도 힘든데 내부투쟁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연대자들을 찾고 같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에 애착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정치가 그게 진짜 자치이고 정치죠. 평범한 사람의 성장을 지역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의 정치 환경은 지역에서 평범한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당에서 얼마나 청년 정치인을 잘 길러내기 위해서는 당부터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돼야 한다. 고은영이 당 활동을 시작한지 2년 만에 경선을 거쳐 도지사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청년도 충분히 대표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혹은 '여자라서'라는 이유가 붙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각자의 생각과 가능성을 무한히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여성 청년들이 당에서 내부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의 정치를 이어나가는 것에 있다. 청년들이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소비되는 것에 고은영은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고, 이 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다.
  
작은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가며

여섯 번째 사연: "이번 선거를 통해 변화하고 있고 조금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은영님은 어떤 순간이나 경험들을 통해 '나아가고 있음'과 '정치'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노력을 보답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고은영은 세 개의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꼽았다. 첫 번째는 오라관광단지 사업을 중단시킨 것, 두 번째는 비례대표 축소 발의 철회, 세 번째는 퀴어문화축제 장소 행정소송이다.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은 도내 사상 최대 규모의 관광개발사업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환경영향평가 절차 위반 논란이 있었으며, 교통, 하수, 쓰레기 피해 등 환경파괴와 난개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고은영은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에 반대하는 시민필리버스터를 하고, "찬성하면 낙선이다"라고 낙선운동을 하고,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해나갔다. 그 결과 자본검증 단계가 도입되며 사업이 실제적으로 중단이 되었다. 많은 도민들이 우려하는 사업이었음에도 10년 동안 막지 못했던 것을 결국엔 막은 것이다.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 반대 기자회견. “찬성하면 낙선이다”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 반대 기자회견. “찬성하면 낙선이다” 고은영
  
지난해 7월, 제주도지사, 제주 지역 국회의원 3명, 제주도의회가 합작하여 도의회 비례대표 정수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비례대표 의석수는 유지하고 전체의석 2석 늘리는 방안을 내놨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비례대표 정수를 축소하겠다고 한 것이다. 제주의 시민단체와 소수정당들이 모여 비판했고, 법안 발의는 철회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통령 공약으로 나온 이 시대에 비례대표를 축소한다고? 그 때 시민들이 만 원씩 모아서 촛불집회를 했어요. 세 번이나요. 그리고 발의안이 철회됐고, 그것이 두 번째 작은 승리의 기쁨이었습니다." 
 
 비례대표 축소 반대 촛불집회. 탄핵 정국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비례대표 축소 반대 촛불집회. 탄핵 정국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고은영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여느 지역처럼 혐오 세력의 반대로 개최에 어려움을 겪었다.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였기에, 축제 자체를 성사시키는 것도 도전이었지만 장소를 얻지 못하는 싸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청의 장소 승인 철회에 관한 부분을 행정소송까지 갔고, 축제 직전날 판례를 받았다.

"판례 마지막에 '이러한 행사들이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근거나 사유가 없다.'라고 나와 있어요. 우리가 그냥 행사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 거죠." 
 
 제1회 퀴어문화축제 행사장 입구. 제주도를 무지개 빛으로 물들였다.
제1회 퀴어문화축제 행사장 입구. 제주도를 무지개 빛으로 물들였다. 제주퀴어문화축제
  
고은영은 이 작은 승리들을 맛보고 만들어내고 지역사회에서 없던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정치에 더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에 녹색당 경선이 시작됐고 도지사에 출마하게 됐다.

승리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경험이다. 인터뷰 내내 등장한 단어는 자기검열과 내부투쟁이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정치를 할 만한 사람인지를 의심하고, 정치 활동을 주저하게 한다.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공간에서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끊임없이 싸운다.

주저하게 하는 것들 사이에서 승리의 경험들은 나의 정치 활동과 방향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더 다양한 여성 청년의 얼굴들이 등장하고, 이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그리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 4회에서 계속)
#여세연 #고은영 #제주녹색당 #여성청년
댓글

여성의 정치적 역량과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세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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