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고등학교 입구1959년 개교한 영등포고등학교는 1964년 굴욕적 한일회담반대운동에서부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다.
양승렬
영화초 바로 옆에는 영등포중고등학교가 있다. 동작구에 영등포중고가 있는 이유는 이곳에 1973년까지는 영등포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영등포중은 서울공고와 영등포중으로 분리된 서울공업중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 역사가 1899년 세워진 상공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서울공고 이야기를 할 때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오늘은 1959년에 개교한 영등포고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의 영등포고는 1, 2학년 학생만 있는 신생학교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런지 4·19혁명 과정에 학교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참여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등포고가 4·19혁명의 한 페이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전혀 뜻밖의 일 때문이다.
영등포고 학생 정하웅(당시 2학년)과 한무섭(당시 1학년)은 동네 친구 이용우(당시 선린상고 2학년), 김의웅(낙양공고 2학년)과 함께 4·19혁명 과정에서 부상당한 동료 학생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인다. 모금운동은 남달리 의협심이 강했던 한무섭이 친구 이광국(당시 한국직업학교 학생)이 4.19혁명 당시 경무대 앞에서 부상당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동네 친구들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동네에 있는 건의함으로 모금함을 만들고 '서울 학생 대표'라고 쓴 어깨띠를 두른 다음 인천 자유시장, 서울 남대문시장과 평화시장 등을 돌면서 모금활동을 벌였고, 심지어 피난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멀리 부산까지 가서 국제극장에서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무섭 일행은 모금한 돈 2만9180환을 한 언론사 부산지국에 전달하였고, 그 사실이 해당 언론에 보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