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뒤벼리 입구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의 민족반역자 안내판'이 최근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의 이름이 암벽에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에 누군가 낙서를 해놓아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경남 진주 뒤벼리 입구에 세워져 있던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은 민족반역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안내판이다. 1999년 12월에 세워 놓았던 이 안내판이 훼손된 사실이 최근 확인되었다.
이 안내판에는 이재각(李載覺), 이재현(李載現), 성기운(成岐運)의 민족반역 행위를 고발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진주 남강변 뒤벼리 암벽에 대표적인 친일파 3명의 이름이 새겨져(음각) 있었는데, 안내판에는 이들의 행위를 까발려 놓았다.
민족반역자 3명의 이름은 도로변 키 높이의 암벽에 80cm 가량 크기의 한자로 깊이 새겨져 있다. 암벽에 새겨진 이름의 정체는 독립운동사료연구가 추경화씨가 이들의 친일 행적을 찾아내면서 알려졌다.
이곳에 이들의 이름이 언제 새겨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 때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발견 당시 광복회 등에서는 새겨진 이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것 또한 역사이기에 그대로 두고, 대신에 그 앞에 '안내판'을 세워놓기로 했다.
'뒤벼리 민족반역자 이름 처리를 바라는 시민의 모임'이 당시 이곳 안내판에 적어 놓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은 민족반역자입니다
여기 뒤벼리는 진주8경의 하나로 옛날부터 남강의 명승지로 알려졌습니다. 1930년대 이후 일제와 민족반역자들이 더럽혔습니다. 일제에 부역하면 이름이 새겨진 바위처럼 영구히 빛나리라는 생각에서, 경술국치를 맞게 한 천인공로할 반역자와 그 친족 이름까지 이곳에 새겼던 것입니다.
이재각은 일왕으로부터 후작 작위와 수백억원에 해당하는 15만원의 은사금을 받았고 일장기가 그려진 훈장을 받았습니다(국사대사전, 인명대사전).
이재현은 군수와 관찰사 재임 중 조선말에 일어난 애국의병들을 회유, 토벌, 재판한 주동자였습니다(고종·순종실록, 관보).
성기운은 경남 전남 충청관찰사로서 의병을 토벌, 재판했고, 일왕으로부터 수백억원에 해당하는 15만원의 은사금과 남작 작위를 받았던 대표적인 일제 부역자였습니다(매일신보, 사법휘보).
이들 민족반역자의 이름을 제거하기에 앞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교훈으로 삼고자 그들의 반역행위를 담은 안내판을 시민의 힘으로 세웁니다.
1999년 12월 28일. 뒤벼리 민족반역자 이름 처리를 바라는 시민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