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하늘 에디터
미디어눈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멈추지 말아야 할 코피가 멎고 말았다. 어머니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감시카메라를 등지고 내 코를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피가 나야만 살 수 있다. 북송의 두려움은 고통을 압도했다. 어머니를 따라 나도 내 코를 힘껏 때렸다. 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피가 나자 어머니는 있는 힘껏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보호소를 지키고 있던 공안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나를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가 밤새 간호해준 덕분에 코피는 멈췄다.
다시 해가 떴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내게 죽어가는 척 연기를 하라고 했다.
"아이고 필주야, 우리 필주 죽어가네! 아이고 내 아들 죽네!"
우리를 끌고가던 군인은 내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다가가 몸을 뒤지며 가지고 있는 돈이 있는지 확인하고, 저항하는 어머니를 때렸다. 우리의 몸부림에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고, 결국 북으로 이송됐다.
새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중국에서 잡아오기 위해 탈북한 것이라고 자백하고 면죄부를 받았다. 나도 새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감옥에서 얇은 옷만 입은 채 한 겨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새아버지와 일분일초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을 어머니였지만, 집 말고는 돌아올 곳이 없었다.
#4 다시, 탈북
어머니와 나는 중국으로 다시 갈 생각밖에 없었지만, 이미 북송을 겪고 감시의 눈초리가 심해져서 탈북은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는 새아버지 몰래 달아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는 급하게 북송되면서 중국에서 받아야 할 돈을 다 못 받았다고 새아버지에게 말했다. "아이고, 큰 실수 했네." 새아버지는 아쉬워했다.
어머니는 내게 중국 돈 10원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고 먼저 집을 떠났다. 둘이 같이 떠나면 새아버지가 의심을 하고 안 보내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셀 수 없이 되뇌며 외우고 난 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쪽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다행히 새아버지는 나를 어머니를 다시 만날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했는지 평소보다 잘 대해 주었다. 3월 말, 겨울이 끝나가면서 두만강 물이 녹기 시작했다. 북송 과정에서 무릎에 무리가 와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지만, 하루빨리 두만강을 넘고 싶단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아버지에게는 카드놀이를 하러 친구 집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두만강으로 향했다. 미리 어머니와 연락을 하고 강 근처에서 브로커도 섭외해뒀다. 기대에 부풀어 브로커를 만났는데, 브로커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올해는 얼음이 유난히 일찍 녹아서 가기 힘들겠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느니 강물에 빠져 죽는 게 낫단 생각이 들었다. 브로커는 내가 잘못되면 어머니한테 할 말이 없다며 곤란해했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어떻게 되든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탈북하려면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이 밥을 먹는 30분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이다, 나가라!"
브로커가 말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강물은 꽁꽁 얼어있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평소였으면 10분이면 충분히 건넜을 거리였지만, 아픈 다리 때문에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30분 정도 얼음을 딛고 건너 중국 땅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준 돈을 꼭 쥐고 택시를 탔다. 중국말이 서툴렀지만, 기본적인 말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택시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택시와 달리 다른 사람들을 꽉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려는 것이다. 옆에 모르는 아저씨 한 명과 아이가 탔다. 갑자기 조선말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때마침 택시가 출발했다.
십 분쯤 흘렀을까 길을 따라 잘 가는 듯하던 택시가 갑자기 어딘지 모르는 곳에 섰다. 또다시 변방대 군인들이 눈앞에 서 있었다. 옆에 탔던 아저씨가 나를 신고했던 것이었다. 당시에 탈북자를 신고하면 중국에서 한 달 치 월급 정도 되는 돈을 포상으로 주었다. 중국 땅을 밟은 지 10분 만에 모든 게 수포가 되었다.
#5 국경 밖에서 또 잡히다... 하지만
변방대에 끌려온 나를 군인들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탈북자가 드문 건 아니지만, 갑자기 신고를 받고 잡혀간 탓에 탈북자 수용소가 아닌 군인들 초소로 바로 오게 됐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자꾸 말을 걸었다. 어떤 군인은 여성의 나체가 담긴 잡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피아오량, 피아오량. (아주 예뻐)" 그게 내가 이해한 중국말 전부였다. '미친놈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3층으로 올려 보내더니 침대에 수갑을 걸어 내 손목을 채웠다. 손목엔 수갑이 채워졌지만, 머릿속엔 도망칠 생각뿐이었다. 어디서 들은 말이 생각나서 엄살을 떨며 수갑을 널널하게 채워달라고 말했다. 수갑을 풀어보려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손목을 조금씩 움직였다. 하지만, 수갑이 오히려 더 조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