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성매매' 17세 소녀, 그곳을 나오지 못한 이유

[김광민 변호사의 노동법 쉽게읽기 5] 강제노동의 금지

등록 2018.11.22 11:53수정 2018.11.2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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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제20조 (위약 예정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제21조 (전차금 상계의 금지) 사용자는 전차금(前借金)이나 그 밖에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대(前貸)채권과 임금을 상계하지 못한다.

제22조 (강제 저금의 금지) ①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덧붙여 강제 저축 또는 저축금의 관리를 규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② 사용자가 근로자의 위탁으로 저축을 관리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지켜야 한다.
1. 저축의 종류·기간 및 금융기관을 근로자가 결정하고, 근로자 본인의 이름으로 저축할 것
2. 근로자가 저축증서 등 관련 자료의 열람 또는 반환을 요구할 때에는 즉시 이에 따를 것
인류가 만든 가장 악독한 제도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 '노예제'가 꼽힐 것이다. 노예제는 반드시 신분제와 연관된다. 주인과 노예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노예제는 신분제가 타파되고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이 보편화하면서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가 되었다. 그러나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제도적 수준이 아닌 개별적 수준의 노예 사건들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신안 염전 노예' 같은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을 노예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유의사가 박탈당한 체 강제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강제로 노동을 시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으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강제노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강제노동이 금지되었냐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성매매 여성의 덫 '소개비'

임권택 감독은 1997년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 <창>을 발표했다. 1970년대 직장을 찾고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수많은 시골 소녀들이 있다. 17세 영은(신은경 분)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브로커가 영은을 안내한 곳은 '성매매 업소'였다. "저기요 여기 보니까 여자들 몸 파는 데 것 같은데요. 나는 술 파는 곳인 줄 알고 왔거든요. 나는요, 몸 파는 짓은 못해요"라며 일어서려는 영은에게 포주는 "소개료 주기 전에 진작 말했어야지"라고 대꾸한다.

브로커에게 10만 원을 주었으니 그 돈을 갚지 않으면 못 간다는 소리였다. 성매매는 못하겠다며 완강히 거부하던 영은은 억센 사내들에게 유린당하고 서서히 성매매에 물들어간다. 당시에는 영은처럼 만져보지도 못한 돈 때문에 성매매 업소에서 강제로 일하게 된 여성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지도 못한 소개비 10만 원에 노예가 된 것이다.

영은의 사연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비스티 보이즈>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젊은 남녀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의 인물들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돈이 목적인, 그들의 말로 '공사'가 목적인 냉정한 관계로 얽힌다. 한별(김민주 분)과 재현(하정우 분)의 관계도 그렇다. 한별은 재현을 사랑하지만 재현은 한별의 돈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었다. 결국 한별은 재현에게 공사를 당한다. 한별은 재현을 붙잡으며 "나 그 돈 '마에킨' 땡겨서 해준거야! 니가 사람이야!"라며 울부짖는다.

목돈의 유혹 '마에킨'


마에킨(前金, まえきん)은 주로 유흥업계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금전차용 방식이다. 한국어로 전차금이라고 하는데, 취업을 조건으로 목돈을 미리 빌려주는 것이다. 마에킨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월급에서 다달이 떼어 갚아 나가는 방식과 일정기간 이상 근속을 하면 탕감해주는 방식이다. 월급에서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은 월급을 원금 및 이자와 상계하는 것이다. 일정기간 근속 시 탕감해 주는 것은 실질적으로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마에킨은 목돈을 미리 빌려주고 임금과 상계하는 것이다.

목돈이 필요한 노동자와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사람이 필요한 사용자의 이해관계를 맞춰주는 마에킨.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21조는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마에킨이 금지되는 이유는 바로 '강제노동의 위험'때문이다.


당장 목돈이 아쉬운 노동자가 선금을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마에킨을 한다면, 그 순간 족쇄가 되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노동자가 마에킨을 다 갚지 않고 일을 그만두면 사용자는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도 한다. 영은처럼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던 돈이 족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에킨이 영은의 소개비 못지않게 노동자를 얽매는 수단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실제로 유흥업계에서는 마에킨에 발목 잡혀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노동자에게는 노동할 권리가 있다. 또한 그 누구도 노동을 강요할 수 없다. 노동이 강요되는 순간 노동자는 노예가 되어버린다. 근로기준법은 강제노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마에킨과 같은 맥락에서 제22조는 강제 저축을 금지한다. 노동자에게 소비 벽이 있어 임금을 받자마자 모두 탕진해 버리는 경우라면 누군가가 저축을 해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용자의 재테크 능력이 뛰어나 노동자의 임금을 대신 관리해주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종종 사용자가 임금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 저축하고 나머지만 실제로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 저축을 해주는 것이다. 노동자는 퇴직할 때 매달 쌓여 목돈이 된 저축금을 찾을 수 있다. 아니면 중간에라도 목돈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저축된 돈을 찾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저금을 찾으려면 일을 해라! 

하지만 퇴직할 때 사용자가 돈이 없다며 저축된 돈의 지급을 미룰 우려가 있다. 이럴 경우 노동자는 꼼짝없이 돈을 받을 때까지 계속 일해야 한다. 일하는 도중 회사가 도산해버리면 노동자는 꼼작 없이 저축된 돈을 날리게 된다. 이처럼 임금 중 일부를 떼어 강제로 저축하는 것은 강제노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은 예금상품의 종류나 기간 및 금융기관을 노동자가 자유로이 선택해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할 수 있고, 저축과 관련된 자료를 원할 때면 언제나 볼 수 있는 등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엄격히 한정하여 임금의 일부분을 떼어 저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면 노동자는 언제든지 예금을 찾을 수 있고 회사가 도산하더라도 돈을 날릴 위험이 없다.

유학을 다녀왔으면 일해야지! 

같은 맥락에서 위약금의 예정도 금지된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고 명기한다. 위약금의 예정은 일종의 벌금이다. 위약금이 강제노동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경우는 '의무복무기간 약정'이다. 복지정책이 잘 되어있는 기업의 경우 일정 근속연수를 채우면 해외연수를 보내준다.

우수인력을 선발해 해외 유학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돈을 들여 유학을 보내줬는데 정작 학위를 받고 돌아온 직원이 대학교수로 이직을 해버린다면 회사 차원에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회사는 해외 연수를 보낼 때 복귀 후 일정 기간 복무한다는 의무복무기간 약정을 진행한다. 의무복무기간 약정은 대부분 기간을 채우지 않고 퇴직할 경우 해외연수 기간 동안 지급된 임금과 경비를 모두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무복무기간은 직원에 투자한 회사가 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수 기간 지급된 돈을 모두 반환하라는 것은 노동자에게 가혹한 조치다. 의무복무기간 약정에 의해 근무를 계속해야 하는 것은 강제노동에 해당할 우려가 있다. 해외연수는 파견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연수 기간에도 노동자는 근로자 신분을 유지한다. 연수 기간 노동자는 회사가 요구한 연수를 수행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노동이다. 이러한 이유로 급여가 지급되는 것이다. 연수 기간 급여는 회사 소속 근로자로 정당하게 받은 임금이다. 따라서 회사는 노동자에게 급여를 반환하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급여 외 체류비나 학비가 지원되었다면 이는 반환 대상이 될 수 있다. 체류비 등 소요경비는 의무복무기간을 채우면 탕감되는, 면책특약부 소비대차계약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강제노동자가 된 한국인

무엇보다 강제노동의 문제는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이다. 파업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노무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다. '나의 노동력을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파업이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하여 처벌되는 일이 빈번하다. 내가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형사처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일하고 싶지 않아도 일을 하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강제노동이다.

이에 대해서는 집단적 노사관계법에서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창>의 끝부분에서 영은은 "이제 아무도 날 잡지 않는다고! 내가 이곳 말고는 갈 데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야!"라고 읊조린다. 강제로 몸을 팔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강요하지 않아도 몸을 팔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탄력근무제 확대로 시끄러운 요즘, 한국의 노동자들이 강요하지 않아도 일해야 하는 강제노동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노동법 #근로기준법 #강제노동 #마에킨 #탄력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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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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