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면 용기 있는 걸까요

살고 싶어서 나다운 선택을 했을 뿐... 나는 그 말이 낯설다

등록 2018.12.28 16:22수정 2018.12.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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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그건 바로 '용기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 말은 제가 듣는 말 중에서 가장 낯선 말이기도 해요. 어떨 때 듣느냐면, 제가 저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들어요.

저는 주 5일제 정규직 직장을 연봉 3천만 원 이상씩 받으면서 나름대로 잘 다니다가 그만둬버렸어요.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주 5일제 직장은 더 이상 다니지 않을 것 같아요. 설령 돈을 더 주더라도요.

저는 월 100~130만 원 정도만 벌 수 있는 주 3일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고 있어요. 왜냐면 글을 쓰고 싶으니까. 그러기 위한 최소비용과 최소시간이 지켜져야 하니까. 그 비용이면 월세와 식비, 보험과 세금을 포함한 고정비용, 교통비 및 통신비를 낼 수 있어요.

그 외 여가비용과 사치비용은 조금 빠듯한데 그건 글 써서 돈 벌기로 한 사람이니까 글 팔아서 만들어내야죠. 주 4일의 시간이 제게 남겨져 있으니 그 시간에 글을 쓰면 돼요. 이론상 별문제없는 계획이잖아요? 그렇지만 다들 용기 있대요.

저는 치열한 고민 끝에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에요. 왜냐하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내몰렸었으니까. 행복하고 싶고, 행복하려면 원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원하는 일들을 하기엔 회사 일이 지쳐서 힘이 없고, 그래서 행복할 수 없다는 굴레를 빠져나와야만 했으니까. 그냥 살고 싶어서 최적의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뿐인데 용기있단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낯설지요.


무서운 점이 있는 건 맞아요. 정규직도 결국 정년퇴임하고 인생 2막 준비해야 하는 건 똑같다만은, 제가 선택한 방식은 그 인생 2막을 좀 많이 빠르게 준비해야 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불안정한 기분이 들죠.

저도 고민의 과정에서 최대한 이렇게 살지 않아보려 애써봤어요. 그래서 주 5일제 회사에 다녔던 적이 있는 거죠. 그렇지만 2년간 다녀본 결과 저에겐 그러면서 꿈을 좇을 여력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죠.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a  메인스트림이 아닌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용기' 있다는 소리를 들어요.

메인스트림이 아닌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용기' 있다는 소리를 들어요. ⓒ unsplash

 
대학 때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분이 초청강사로 오셔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은 그러시더라고요.

"자신은 단 한 번도 여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자신은 남자가 되려 노력했다. '남자'처럼 입고,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처럼 말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겐 너무나 불편하고 괴로웠고, 그래서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끝내 인정하고 성전환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자신은 행복하기 때문에 빨리 결심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약 6년 전에 들은 강연인데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분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시기까지 왜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성전환 수술에 대한 부족한 정보, 수술 이후의 삶에 대한 제도적 장치 미비.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지요. 뒤집어 말한다면, 그것들이 미리 마련돼 있었더라면 훨씬 빠르게 결심하시고 빠르게 행복해지실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의 저도 비슷한 감상을 느껴요.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애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이 꼭 주 5일제 정규직으로 취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누군가가 해주었다면, 가만히 방 안에 있는 저에게도 닿을 만큼 당연한 사실로 퍼져 있었다면, 제가 괴롭게 고민한 시간들도 줄어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아직 고민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도 줄어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프리랜서나 파트타임이란 고용 통계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일하지 않는 되먹지 못한 사람' 취급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메인스트림이 아닌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용기' 있다는 소리를 들어요. 용기 있다는 건 다수의 사람이 고르지 않으려 하는 어려운 행위를 골랐다는 뜻이죠. 자신이 가장 자연스러운, 괴롭지 않은 상태에 있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한다니 너무 슬픈 일이에요. 괴롭지 않기 위한 일이 남들이 애써 피하는 길이라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내어야 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살아도 번듯하게 잘 살 수 있다고, 굳이 피하려고 애써야 할 길이 아니라고 만천하에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없어요.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누군가에게까지 또렷이 닿도록.

제가 하는 고민은 직업을 초월해 이 시대의 청년들이 함께하는 고민일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자신의 기준대로 살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마다 불안해지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제가 하나의 아이콘이 되겠어요.

저는 용기 있진 않지만 아주 잘살아 보일 거예요. 그러기 위해 아주 강하고 아주 똑똑해질 것이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거예요. 그게 제가 칼럼을 쓰는 가장 주요한 이유이며, 앞으로도 써나갈 이유랍니다.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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