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광장의 촛불을 다시 복원하기 위한 방법

등록 2018.12.31 18:14수정 2018.12.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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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촛불항쟁 2주년을 경과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각종 언론 매체의 정치면에서 촛불혁명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다수 매체와 포털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40%대로 하락하고, 심지어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간의 역전(이른바 '데스 크로스')이 일어난 현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언론은 더 이상 촛불항쟁이나 촛불시민들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는다. 촛불항쟁 2주년을 맞아 촛불항쟁을 둘러싼 다각도의 분석도 시도해볼 법 한데, 그러한 움직임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언론 지면상에서 촛불항쟁과 촛불시민은 어느새 조용히 사라졌다. 이는 촛불항쟁을 거쳤음에도, 주류 엘리트층은 전혀 변화하지 않은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일 것이다.

적폐청산 주체에서 배제된 '촛불시민'

촛불항쟁의 혁명 규정 여부는 훗날의 사가가 평가하겠지만, 최소한 촛불항쟁은 '촛불시민'이라는 '광장의 주체'를 탄생시켰고, '정권 교체'라는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냈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만을 놓고 보면, 촛불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그 모든 것이 '정권 교체'에서 마무리되고만 듯한 인상이다.

그 많던 촛불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교체된 정부와 그 정부를 향해 공격을 퍼붓는 보수 정당과 언론뿐이다. 어느덧 '적폐청산'의 주체에서 '촛불시민'은 배제됐다. 그저 시민은 대통령 지지 여부에 응답하는 피동적 존재로 전락했다. 정권 교체 후 각종 미디어의 담론과 보도 행태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이끌었다. 대다수 미디어는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에만 관심을 집중할 뿐, 촛불시민과 그들이 외쳤던 사회·경제적 개혁의 과제와 그 실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적폐청산과 재벌개혁을 소망하면서 정작 청와대만 바라보는 자세가 그것의 실현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청와대의 의지와 역량만으로 수십 년 넘게 굳어져온 사회·경제체제를 단기간에 개혁해낼 수 있을까?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니다. '5년 단임제'로 표상되는 현재의 헌정질서 안에선 어느 정부건 '현상 관리형 정부'가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엄연한 탓이다. 게다가 각종 개혁 과제 중에는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기 곤란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언론개혁이 그러하다. 언론개혁이야말로 촛불시대의 가장 절박한 일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주도형 언론개혁'이 당장 가능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주류 언론과 포털은 '대통령 지지율 중계'를 통해 대중의 시선을 청와대로만 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보수진영의 투트랙 공세

이처럼 촛불시민이 광장과 담론 영역에서 사라진 틈을 타 문재인 정부를 향한 보수 세력의 공세가 갈수록 확대, 강화되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공세는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대북 평화정책과 같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을 겨냥한 공격이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박용진 3법'을 비롯해 정부 여당이 추진 중인 개혁 법안 상당수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현재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다른 하나는, 정략적 성격을 내포한 '정치적 공세'이다. '드루킹 사태'부터 작금의 '김태우 수사관 사태'에 이르기까지 집권 여당의 '유력 정치인' 또는 현 정권의 '정당성'을 파괴하려는 정치적 공세는 정권 초기부터 지속되고 있다. 그 방식 역시 일정한 '조직적 패턴'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 특정 의혹을 먼저 제기하면, 대중적 영향력이 막강한 포털과 언론이 이를 연일 '중계'하며 여타의 이슈를 집어삼키는 식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사실 검증이 되지 않은 한낱 음해일지라도 처음 문제를 제기한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실 이 같은 보수 진영의 공세는 권력의 기본적 속성과도 연관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권을 틀어쥔 정치세력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하나는, 주어진 권력을 활용해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의 정책을 관철하는 일이다.

특히 민주개혁정부의 경우 기득의 독점 구조를 타파하고 대다수 서민의 생활을 향상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특정 정권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반대 진영이나 이익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이 점은 개혁적인 정부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거나 지속하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즉, 권력을 유지하고 지속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과거 보수 정권의 경우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국정원, 기무사 등 각종 국가기관을 동원한 사찰, 감시, 미행, 블랙·화이트리스트, 댓글공작과 같은 여론공작, 언론 장악을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즉, '공포 조장'과 '여론조작'이 이들의 무기였던 셈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 드러나듯 보수 정치인에게는 선출직 국회의원 자리조차 '이권'이기에 이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명박의 천문학적인 비리와 부패 역시 이런 조건 속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민주정부의 경우 그런 방식으로 권력을 지속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민주정부의 정당성이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둘 수만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정부의 권력이 효과적으로 작동되고 유지될 수 있는 대안 모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진보언론 무엇을 해야할까

문제는, 진보적 언론조차 이러한 고민에 대해 거부감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모든 권력은 비판의 대상이라 여기는 의식과 함께 '공정' 또는 '균형'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적어도 진보 언론은 보수 언론과 달리 '당파적 관점'을 떠나 사안을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태도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 현실의 변화에는 별다른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참여정부 시절일 것이다. 당시는 보수, 진보 언론 가릴 것 없이 참여정부를 그야말로 '두들겨 팼다.' 그 뒤 결과는 어떠했는가. 결국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고, 박근혜-최순실 정권이 탄생했다. 그로인해 지난 9년 동안 국민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나 컸다.

'권력'과 '정치'는 지극히 현실의 문제이다. 모든 인류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대의와 이상은 자명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회처럼 재벌 대기업으로 표상되는 기득권 구조가 강고하게 뿌리내려 있는 사회에선 더욱 그러하다. 만일 향후 문재인 정부가 약화돼 또 다시 정권이 교체된다면, 다시금 거대한 '반동'이 휘몰아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사회가 그러한 반동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민주적 기반이 튼튼하다고 볼 수 있는가? 박근혜 정권의 '계엄령 문건'에 관한 수사가 흐지부지 끝난 사실이 보여주듯 이 땅의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적폐청산은 곳곳에서 표류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보수 세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철저히 반성을 하고 새롭게 재탄생했다면 또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는 전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실로 박근혜-최순실 정권은, 어처구니없게도 "우주의 기운"을 신봉했던 '샤머니즘 정권'이었고, 이들의 국정농단은 그전까지 보수 세력이 그토록 외쳤던 '국격'을 하루아침에 실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태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 시민들은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운운하며 박근혜를 추켜세웠던 그 많은 정치인, 언론인 중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지거나 반성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의 사전에 '반성'과 '책임'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러한 '철면피' 속성이 지난 70년 동안 이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아마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 점은 한때 보수 혁신의 기치를 내걸었던 바른미래당(구 바른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들은 보수 세력 중 유일하게 반성의 기색을 보였지만, 당의 대주주라 할 수 있는 유승민 전 대표의 자유한국당 '복당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이들의 '반성' 역시 허울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린 선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 하에서 지금 진보 진영과 진보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진보 언론의 경우 그동안 견지해왔던, '정치적 올바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곧 보수 언론이 주도하는 '의제'나 '프레임'에 포획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예컨대 "문재인 정권이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세상에 어느 정권이 모든 국민을 100%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이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는, 현실의 변화와 개혁에 아무런 긍정적 영향도 미칠 수 없는 헛발질에 불과하다. 더 정확하게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전선치기'의 상대와 전략을 명료하게 하는 게 아닐까?

이와 동시에 진보 언론 나름의 의제를 계발해 지속적으로 주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보수 진영의 공세에 맞서기만 하다보면, 의제 주도권의 상실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즉, 보수 진영의 의제를 대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과제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의제는 정치적 측면에선 '언론 개혁', 사회경제적 측면에선 '탈성장 체제'가 아닐까 한다.

먼저 언론 개혁의 경우 자칫 '언론 자유'라는 명제 앞에 가로막히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언론 '자유'의 일차적 전제조건은 언론의 '독립'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언론이 독립되지 못하고 특정 세력에 종속된다면, '언론 자유'는 말 그대로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을 종속시킨 세력의 자유'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장충기 문자'에서 잘 드러나듯 한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은 광고를 매개로 재벌대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종속 언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언론개혁과 관련해선 '진보언론 대 보수언론'의 프레임이 아니라 '독립언론 대 종속언론'이라는 '프레임의 전환'을 통해 관련 의제를 주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우리에게도 임박하고 있는 전 세계적 '탈성장 체제'의 흐름 역시 주목해야 할 의제다. 근래 들어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지금과 같은 성장체제가 더 이상 지속가능한가라는 회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자본주의 시대가 낳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불평등 역시 갖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평등'이 각국의 극우 포퓰리즘을 부추기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이제 더는 가능하지도, 또 가능할 수도 없다는 징후들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향후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2도로 제한한 파리기후협약이 지난 10월 인천에서 열린 제48차 UN IPCC 총회에선 1.5도 상승으로 수정된 게 단적인 사례다.

경제성장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여전히 위력적인 한국사회에선 '탈성장'에 관한 관심이 부족하지만, 우리 역시 과거와는 다른 삶과 사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은 갈수록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어찌 보면 그동안 경제성장 자체는 긍정하면서 재분배에 역점을 두어 왔던 진보 진영에게 보수 진영의 '성장 신화=박정희 신화'와 확연히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촛불을 복원하기 위한 방법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광장'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간 촛불시민들을 이제 '담론' 영역에서나마 다시 복원하는 과제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의제일지라도 결국 대중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동력을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년 전 겨울, 추위와 맞서며 새벽 늦게까지, 때로는 촌철살인의 예지와 풍자로, 때로는 집회 후 마지막까지 광장에 남아 자발적인 뒷정리로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촛불시민들의 염원과 기억을, 최소한 진보적 매체들이라도 적극적으로 소환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이와 관련해 촛불항쟁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한 명씩 찾아가 인터뷰하는 장기 기획 연재 역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를 통해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목소리가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일상으로 돌아갔던 촛불시민들이 그렇게 복원된다면, 또 촛불시민 스스로 다시 미디어와 광장으로 나선다면, 적폐청산과 사회경제 개혁의 동력은 다시금 소생할 수 있지 않을까?

  일제와 역대 극우 독재정권의 각종 탄압을 거치며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비판세력'으로 존재해온 한국의 진보 세력은, 그동안 진실을 드러내고 비판을 수행하는 측면에선 뛰어났지만,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전략을 집단적으로 주도하는 측면에선 한계를 보여 왔다. 이제는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실망하지 말고 조바심을 내지 말자. 오히려 이런 정서야말로 지금 이 사회의 '적폐세력'들이 노리는 바가 아닐까? 중요한 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공격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긴 안목으로 냉철하게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자세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상황은, '청와대의 위기'가 아니라 진보진영 및 촛불시민 전체의 자세와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촛불시민 #촛불항쟁 #정치적 올바름 #진보언론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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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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