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한국, 두 소리의 만남, '봉주르 판소리'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것이 바로 다문화의 시너지

등록 2018.12.31 10:48수정 2018.12.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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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판소리 민혜성과 에르베의 '사랑가' 열연 모습 2018년 12월 29일(토), 아트홀 가얏고을 에서 공연된 봉주르 판소리 무대에서 민혜성 명창과 에르베 아니리 광대가 '사랑가' 열연하고 있다. ⓒ 김선희


  
  

봉주르 판소리 마지막 무대, 남도민요, 뱃노래와 진도아리랑 공연 모습 봉주르 판소리, 마지막 무대를 통해 유럽 각국에서 들어와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남도민요, '뱃노래'와 '진도아리랑'을 열창하는 민혜성 명창의 공연 모습 ⓒ 김선희



지난 12월 29일(토)15시 아트홀 가얏고을(서울 선릉역 6번 출구앞)에서 소을소리판이 주관하고 파리 K-vox(케이-복스)가 협력한 <봉주르 판소리> 공연이 있었다.


소을소리판 대표 민혜성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이수자)은 2007년 파리 한국문화원 등의 기관과 교류하며 매년 한국의 판소리를 프랑스에 전하는 문화 외교관 활동을 톡톡히 해왔다. 10여년간 프랑스와 벨기에의 여러 지역을 오가며 제자를 양성하던 중 2013년부터는 유럽에서 양성한 제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다양한 기획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파리 Fastival K-vox(페스티발 케이-복스), 한유미 대표와 더불어 배우이자 극작가인 에르베 페조디에(Herve̍ PḖJAUDIER)와의 기나긴 우정을 이어오며 '봉주르 판소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노래), 아니리(말), 발림(몸동작)을 통해 1인 다역으로 서사적인 긴 이야기를 꾸며 나가는 우리의 대표적인 극음악이다.

민혜성 명창이 처음으로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한 수도원에 마련된 공연장은 시설 미비로 자막을 보여줄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유미 대표가 번역한 판소리 사설에 에르베 특유의 재치있는 연기와 몸동작을 넣은 프랑스어 아니리를 먼저 소개했다. 그 뒤를 이어 민혜성 명창의 판소리 공연이 이어지도록 구성한 것이다.

첫 공연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판소리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충격과 경이로움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다양한 표정으로 재치와 감동을 더한 에르베의 프랑스어 아니리는 그 자체로도 공연의 재미를 한층 더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매년 이어지는 다양한 공연에서 에르베와 민혜성은 협력관계를 이어갔고, 결국 '아니리 광대'라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2014년 한국에서 '봉주르 판소리'를 성황리에 기획하여 공연한 뒤, 주로 프랑스의 여러 공연과 행사에서 그 열기를 이어가다가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 2회 공연을 펼쳐냈다. 그간 한국의 판소리를 배우고자 이역만리 한국을 찾아온 다국적의 유러피안 제자들이 함께하여, 그야말로 다양한 색채의 향연을 이루었다.

특히, TV다큐멘터리와 예능방송을 통해 이미 유명인사가 된 카메룬 출신 로르 마포(Laure Mafo)는 외국계 제자를 대표해 춘향가 중에서 손꼽히게 사랑 받는 눈 대목, '쑥대머리'를 독무대로 열창하여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에르베의 흥보가 중 '화초장' 대목의 프랑스어 아니리로 시작한 공연은 익살스런 그의 표정과 풍부한 행동 묘사에 궁금증을 자아냈고, 민혜성 명창의 소리를 통해 '아하'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민혜성 명창은 프랑스 공연에서 내용 이해를 위해 선행했던 프랑스 아니리를 한국에서도 선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관객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 에르베의 리드미컬한 프랑스어 아니리를 듣는 동안 갸우뚱하며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다가 한국어 판소리를 들었을 때의 반가운 표정의 반응을 보는 게 공연자로서는 무척 즐겁다는 것이다.

기획한 의도대로 에르베 특유의 풍부한 표정과 몸짓,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듯한 프랑스어 아니리를 듣는 동안 몰입하는 가운데서도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이 차오르다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흥보가나 춘향가의 눈 대목을 한국어로 들었을 때의 그 시원스런 해갈이 판소리에 대한 친숙함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듯했다.

이 날 민혜성 명창은 스승, 고 박송희 명창이 복원한 <숙영낭자전>을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는 조선후기 12마당 이상 번성했던 판소리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5마당(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으로 축소된 것에 대해 그 지평을 다시 넓히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봉주르 판소리 출연진의 기념촬영 성황리에 봉주르 판소리 공연을 마친 민혜성 명창과 유럽계 소리꾼들, 그리고 아니리 광대 에르베가 무대 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김선희



 

봉주르 판소리 마지막 무대 후 전 출연진의 인사 모습 열기가 뜨겁던 '봉주르 판소리'의 마지막 무대 후 전 출연진이 무대로 나와 인사 모습 ⓒ 김선희


 마지막으로 민혜성 명창과 그의 외국계 제자, 로르 마포, 빅토린 블라보, 가랑스 카샤르, 다미롤라 앤이아라가 최효동(장구)와 박진경(대금)의 반주에 맞춰 남도민요, <뱃노래>와 앵콜곡 <진도아리랑>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시간여 공연 중 내내 관객들의 추임새가 끊임없었지만 형형색색 아름다운 한복과 흥겨운 몸짓, 소리의 향연으로 빚어진 마지막 무대에서는 '얼씨구', '좋다', '나이스', '쎄봉', '부라보' 등의 다국적 추임새마저 한데 어우러져 서로 다른 색채를 담은 열정의 시너지로 넘치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한유미 대표는 무대의 시작을 여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세계를 강타한 K-pop의 열풍이 프랑스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는 현상에 대해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문화 전체를 K-pop으로만 이해하는 일부 프랑스인들의 인식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죠. 우리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전통문화, 판소리를 소개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저력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리아의 K, 소리의 vox를 결합하여 K-vox열풍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10여 년 간의 노력을 함께해 오는 가운데 싹튼 민혜성 선생님과 우리의 우정이 오늘의 '봉주르 판소리'라는 뜻깊은 결실로 맺어졌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판소리를 배우는 소리꾼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민혜성 명창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다보면 '소리를 더 잘하고 싶다'며 방법을 물어오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말했죠. '판소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가서 산 공부도 하고 한국문화를 두루 익혀야한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진짜로 하던 일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제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 만큼 판소리의 매력에 매료된 것이죠.

사실이 그래요. 우리나라 성악가들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성악의 본고장으로 배우러 다녀와야만 그 전문성을 인정받잖아요? 그러니 판소리를 잘하려면 본고장인 한국에 들어와서 배우는 게 맞는 거죠. 하하하."


오프닝 인사말에서 한유미 대표는 '두 나라간 문화 예술인들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싹튼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프랑스어와 한국 판소리 문화 교류의 시작 이었다'고 소개한다.

 

봉주르 판소리 팜플렛 2018년 12월 28일(금) 아트홀 가얏고을에서 공연한 봉주르 판소리 공연 팜플렛 이미지 ⓒ 김선희



이를 통해 '보다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존경으로 시작된 크고 작은 문화 교류'야말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문화 공생공존의 과제를 풀어갈 중요한 열쇠'가 되어 주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앞으로 다양한 지역 간 문화예술 분야 민간단체들의 협력과 원활한 교류를 지원함으로써 우리사회가 지닌 다양성에의 깊은 고민도 점차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봉주르 판소리 #민혜성 #에르베(HERVE? P?JAUDIER) #K-VOX #아트홀 가얏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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