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 와서 영어 안 늘어도 마음 편한 이유

〔50대 백수의 어학연수 ⑧〕 어학연수는 34년 직장생활 끝내며 나에게 준 '선물'

등록 2018.12.31 18:06수정 2018.12.3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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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바기오에 어학연수를 온지 두 달이 되었다. 세월의 흐름과 비례하여 바기오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자연스러워졌으며 낯설기만 했던 도시도 마치 고향 마을처럼 편안해졌다. 외국에 있다는 생각보다 용인이나 양평에 있는 기숙학원에서 생활하는 느낌이다.


두 달 동안의 변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하루하루의 생활은 다른 의미로 내게 각인된다. 어학원의 스텝과 교사들, 국적을 달리하는 동료들, 어학원 앞 가게의 주인까지 점점 살가워진다. 두 달 동안의 바기오 생활을 통해 나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 아침 운동이다. 매일 아침 10km 정도 걷거나 뛰고 있다. 해발 1500미터 바기오의 아침은 싱그럽다.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아침을 맞는 느낌이다.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시면서 하는 아침 운동은 상쾌함 자체이다.
 
일출 기숙사 내 방에서 보는 바기오의 일출 모습
일출기숙사 내 방에서 보는 바기오의 일출 모습신한범
아침 운동 아침 운동 모습
아침 운동아침 운동 모습신한범
둘째, 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바기오 생활을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비대한 나의 몸에 쇼크를 주기 위해 결정한 것이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육식을 하지 않으면 나의 몸에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하였다.

셋째, 가족 간 믿음과 신뢰가 증가하였다. 떨어져 있지만 온라인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주고 받고 있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가끔은 한 발 물러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살면서 필요한 일이리라.

넷째, 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원어민과 적당히 공부하면 적당히 영어 회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하였다. 하루 7시간의 수업, 그중 4시간의 1:1 수업을 통해 획기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두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영어 실력은 변화가 없었고 나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어학원 도서관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어학원 도서관저마다의 목표를 위해신한범
그런데, 지난 주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젊은 친구들처럼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것도 아니고 어학점수를 필요한 회사원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어학연수는 34년 직장 생활을 끝내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인 것이다. 3개월간의 휴식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변화, 희망, 후회... 호주로 가는 한국 청년들

어학원은 격주로 학생이 입학한다. 계절에 따라 신입생 숫자는 다르지만 나와 함께 입학한 학생은 20여 명. 그중 우리나라 젊은이가 10명 정도. 군대는 아니지만 나이와 성별을 떠나 동기 의식이 생겨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Michael(마이클, 어학원에서는 영어 이름을 사용함)은 마닐라에서 바기오에 오는 버스에서 만나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20대 후반인 그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직장에 사표를 내고 말레이시아에서 두 달 어학연수를 한 후에 다시 필리핀으로 왔다. 그가 신중한 표정으로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다음 주 호주로 떠나게 되어 송별회 자리라고 한다.

워킹 홀리데이는 나라 간에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방문국가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만 18세에서 30세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며 1회에 한해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발급된다. 체류 기간은 1년이면 1년 연장할 수 있으며 관광 비자나 학생 비자와 달리 합법적으로 노동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뉴질랜드·대만·덴마크·독일·스웨덴·아일랜드·영국·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체코·캐나다·프랑스·호주·홍콩·헝가리·이스라엘 등과 워킹홀리데이비자 협정을 맺고 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친구는 모두 여섯 명이었으며 같은 날 어학원에 입학한 우리나라 동기들이었다. 3명의 젊은이가 두 달간의 어학연수를 끝내고 호주로 떠나는 것이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와서 필리핀에서 곧바로 호주로 떠난다고 했다.

이번 주 떠나는 세 명의 젊은이는 모두 20대 후반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에게 호주로 가야하는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뭔가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곳에 정착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거냐는 질문에는 모두 "언젠가는 돌아오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있을 것인데!"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필리핀 젊은이들의 꿈은 한국에 가는 것이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꿈은 호주로 향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호주가 그들의 희망대로 기회의 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리를 마무리 하였다.

추석 즈음에 마이클이 몇 달 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 세컨드 비자를 받기 위해 공장과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어 때문에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왕 시작한 것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습니다."

그의 희망이 이루어졌으면...
#필리핀 #바기오 #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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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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