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가 동성애 비극이라는 한국당... 처방전은?

[동행취재]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캠페인 현장, "여기 숨겨진 청년들이 있다"

등록 2019.01.28 19:58수정 2019.01.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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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청년들이 28일 낮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스크린도어 공사 현장 앞에서 숨겨진 청년 노동자를 찾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김시연



"여러분이 뻘쭘하면 사람들은 더 뻘쭘해 해요."

선배 활동가인 조희원(28) 청년참여연대 간사의 격려에도 '예비 활동가'들은 긴장을 떨쳐내지 못했다.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전단지와 푹푹 쓰러지는 피켓, 눈길이라도 마주칠까봐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 뒷모습에 이들은 그만 울상을 짓고 말았다.

구의역에서 이태원까지... 예비 활동가들, 호된 신고식

28일 서울 곳곳에서 첫 캠페인에 나선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청년들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청년들은 노동 팀(청년 노동자 문제), 무지개약국 팀(차별금지법), 비정상회담 팀(외국인 차별 문제), 왈왈이 팀(동물카페 아웃) 등 4개 팀으로 나눠 이날부터 이틀에 걸쳐 구의역과 대학로, 이태원 등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보통 한 곳에서 캠페인을 벌인 다른 팀들과 달리 '노동팀'은 이날 오전부터 '숨겨진 청년 노동자'를 찾아 서울 곳곳을 누볐다. 이들은 2년 전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노동자의 숨결이 남아있는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승강장을 출발해 성수동 수제화 거리와 대학로 연극가를 거쳐 을지로 철물점 거리와 고 김용균씨 추모공간이 있는 광화문, 홍대 앞 카페거리까지, 청년 노동자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정작 노동 현장에서 '청년 노동자'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청년 노동자들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새벽이나 야간 시간대, 아니면 공장 안쪽 깊숙한 곳에 '숨어' 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청년 노동자의 몸과 팔, 다리 모습을 형상화한 피켓을 들고 "그래도 괜찮은 노동은 없다", "Here I am(내가 여기 있다)", "No! Hidden(숨기지 말라!)"이라고 외치고 다닌 이유도 이처럼 숨겨진 청년 노동자를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들은 숨어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일수록 노동 환경도 더 열악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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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학생들이 28일 낮 서울 성수동 한 공장 앞에서 숨겨진 청년 노동자를 찾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김시연



"김용균처럼 숨겨진 '청년 노동자들' 밖으로 드러내야"

노동팀 손혜진(27)씨는 "오늘 구의역을 방문했지만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청년 노동자들은 새벽 시간대에 일해 찾아볼 수 없었고, 성수동 수제화 거리도 20~30대 청년노동자가 많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발견하지 못했다"라면서 "현장을 다녀보니 청년 노동자를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씨는 "고 김용균씨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서 일하며 착취를 당하고 있는 청년 노동자들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었다"라면서 "숨겨진 청년 노동자가 있는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드러내는 활동이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팀이 성수동을 거쳐 대학로에 왔을 때쯤, '무지개약국팀'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거리를 오가는 시민을 상대로 성소수자에 대한 거짓정보를 바로잡는 한편, 성적 지향이나 피부색, 출신지역, 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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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무지개약국팀' 학생들이 28일 서울 대학로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청년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하지만 한겨울 강풍 탓에 이날 캠페인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전단지와 피켓들은 바람에 날리기 일쑤였고, 시민들도 추위와 바람을 피해 걷느라 이들의 외침에 귀기울기 어려웠다.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의 발길이 한 사람 두 사람 늘어나면서 청년들의 굳은 표정도 조금씩 풀어졌다.

무지개약국팀 서진원(25)씨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과 더불어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 가짜뉴스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개선을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라면서 "처음엔 시민들의 무관심이 느껴졌지만 몇몇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의의로 나이든 분들도 적극적으로 찾아와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헛소리 공명 증상' 자유한국당에 보내는 처방전은?

무지개약국팀은 이날 시민 선전전에 그치지 않고, 평소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발언을 많이 하는 정당이나 단체에 차별 인식 개선을 위한 서적이나 물품을 담아 '처방전' 형태로 보내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들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동성애의 비극이라고 평가한 홍준표 전 대표 등이 몸담은 자유한국당에 '헛소리 공명 증상'이란 진단과 함께 '혐오 표현은 칼'이란 의미를 되새기는 책 <말이 칼이 될 때>와, 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등을 처방했다. 이밖에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에도 '처방전'을 소포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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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무지개약국팀' 학생들이 28일 자유한국당에 보내는 처방전 물품. 이들은 자유한국당에 ‘헛소리 공명 증상’이란 진단과 함께 ‘혐오 표현은 칼’이란 의미를 되새기는 책 <말이 칼이 될 때>와, 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등을 처방 물품을 소포로 보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청년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다국적 청년들로 구성된 '비정상회담팀'은 이날 오후 이태원에서 '외국인 차별'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태원을 오가는 내·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에서 느낀 외국인 차별 문제를 조사하는 한편, 이주 노동자 차별 실태도 알렸다. 이들 캠페인에는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큰 관심을 보였고, 실제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처럼 곳곳에서 청년들과 외국인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비정상회담팀' 김홍진(27)씨는 이날 "사람들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조금씩 있는데 이를 바꾸려면 직접 만나서 직접 얘기하고 자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캠페인을 준비했다"면서 "시민들 반응도 생각보다 좋았고 외국인들도 자기들이 느낀 차별 문제를 솔직히 말해 유대감도 느꼈다"고 밝혔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경험한 차별은? 국경 없는 '비정상회담'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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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비정상회담팀'이 서울 이태원에서 진행한 외국인 차별 인식 개선 캠페인에 참여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느낀 차별 문제를 적은 쪽지를 지켜보고 있다. ⓒ 김시연



특히 김씨는 "한국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는 동남아시아 근로자들 차별이 심각해 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면서 "외국인 선원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 한국인 노동자의 1/3에 불과한 월 52만 원 정도밖에 못 받는 경우도 있었고,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규제도 안 돼 하루 15-20시간 일하면서도 미끼로 쓰던 생선을 반찬으로 제공받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 팀의 캠페인을 모두 지켜본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활동가 역시 청년공익활동가학교(옛 '청년인턴 프로그램') 출신이다. 조 활동가는 "나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청년인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평소 시민단체 활동가를 할 생각이 없던 친구들도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참여연대 청년인턴제로 시작해 올해 23기 졸업을 앞둔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시민사회단체에 젊은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활동가 양성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 이 학교 졸업생들 가운데 참여연대 활동가만 5명이고, 다른 시민단체나 정당, 언론계, 법조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익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23기 서진원씨는 "전 세대에 걸친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곳은 많지만 청년들 문제만 초점을 맞추는 곳은 별로 없다"면서 "청년공익활동가학교를 통해 청년 불평등 문제 등 청년 문제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마지막으로 '왈왈이 팀'은 오는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동물 카페, 실내 동물원 등 동물 전시 사업의 운영 실태를 고발하는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주토피아는 없다'는 주제로 스스로 동물 모습으로 분장하고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 목소리를 대변하는 '전지적 동물 시점의 피켓 운동'을 예고했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참여연대 #청년노동자 #외국인차별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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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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