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서울 성곽길 좋아하는 서울성곽길을 나는 음력 섣달그믐날 걸었다. 특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 백악마루까지 오르는 길이 좋다. 비온 다음날이라 서울시내가 잘 내려다 보였다. 백악마루를 지나 숙정문 앞에 섰다. 서울의 4대문 중, 이름이 바뀐 북대문이 숙정문이다. 원래 4대문 이름엔 인,의,예,지가 하나씩 들어가게 돼있었다. 북문은 홍지문이 될 거였다. 지(智)는 시비지심(是非之心). 당시 정치인들은 백성들이 정치의 시비를 구별하게 똑똑해 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지자 대신 개혁과 정화라는 뜻의 숙정을 썼다. 숙정문 앞에 서면 나는 사라진 지(智)자를 생각하고, 여자가 똑똑해지는 걸 싫어하는 가부장제를 생각하곤 한다.
김화숙
월요일 아침 8시, 나는 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지하철 경복궁역에 내려 서울 성곽길을 올랐다. 자하문으로 들어가 가파른 계단으로 백악마루까지 가서 숙정문을 거쳐 길상사로 내려갔다. 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절밥을 먹었다. 절 카페에서 책도 보고 쉬었다. 입춘의 절은 인산인해였다. 모든 사람이 귀성 전쟁 중은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심우장 쪽으로 넘어가, 와룡공원 성곽길을 오르다 성균관대 쪽 샛길로 내려갔다.
우리 모녀는 한산한 서울 도심을 웃고 떠들며 다녔다. 광장시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시장통을 겨우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니, 거기도 사람들이었다. 강남의 거리에도 중고서점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우리가 저녁을 먹은 태국식당도 계속 손님이 찼다. 12시간 만에 안산에 돌아왔을 때, 내 만보기 숫자는 3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설 당일에는 글을 쓰기 위해 동네 카페를 찾았다. 길에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모두 카페에 있었다. 글을 쓰며 보니, 문밖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계속 보였다. 세상 모든 여자가 전 부치는 게 아니듯, 우리 자식 세대는 다르게 사는 게 보였다. 인천공항을 빠져나간 사람 수가 역대 최고라지 않던가. 아직도 명절노동이며 차례상이 단골뉴스가 되는 세상은 얼마나 상상력이 빈약한가.
다시 살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설 앞두고 뜨거웠던 '시가-처가 호칭' 문제를 생각한다. 여성가족부가 대안적 호칭을 만들겠다지만, 아마도 먼 길이 될 것이다. 호칭 바꾸자는 아내한테 어느 남편은 "넌 우리집이 우습구나"로 답했다나. "성차별인가?"라고 물은 여론조사 결과엔 한숨이 나왔다. 여성들 다수는 성차별이라는데, 남성들 다수는 성차별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