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상욱 CBS 대기자가 정년퇴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영광
- 프레스카드 없는 기자가 직면하는 외압은 어떤 건가요?
"일단 관공서 출입이 금지입니다. 정부 부처나 기관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나 정책자료도 받을 수 없죠. 정부 기관 기자단에 들어 있지도 않고 취재가 허용된 언론사도 아니니 기업에서도 취재 관련해선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 기자실 기사와는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보고 취재해야 했던 겁니다. 보도자료를 받아들고 그것에 입각해 질문을 하고 보도자료 준 사람에게서 설명을 듣는 '받아쓰기 저널리즘'으로 시작하지 않고, 현장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 지금도 늘 쌍방향의 저널리즘을 생각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 출입처가 아예 없었겠네요?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프레스카드가 여전히 존재하고 정권이 프레스카드 발급을 수단으로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이니 사실상의 기자 허가제인 셈이었고 언론기본법에 의해 뉴스를 금지당한 처지에서 출입처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죠. 출입처가 없으니 민주화운동단체나 빈민·철거민 등 사회운동단체, 농민단체나 노동운동단체 불온단체들이 주 출입처였습니다.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취재를 하다 보니 취재인지 운동인지 애매했고 걱정도 들었죠."
- 운전면허 없으신 거로 알아요.
"네.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했고, 약간의 색약도 있어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80년대 말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는 저술을 만나면서 '하나뿐인 지구', '느리게 살기', '단순한 삶'이라는 주제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의 변혁에는 정치투쟁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과 의식의 변혁도 중요하다는 걸 생각한 겁니다. 환경운동을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꾸려나가던 환경운동가들과 만남도 큰 가르침이 됐고요.
수습 시절부터 따랐던 고희범 선배(전 한겨레신문 사장, 현 제주시장)가 술자리에서 기자가 자가용 타고 풍족해지면서 시내버스나 연탄가스 기사가 사라져버렸다고 한탄하며 저널리즘과 민중론을 고민한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 기자 생활하시면 아쉬움은 없나요?
"출입처 경험이 너무 일천해 국가정책이나 살림살이, 권력의 메커니즘 파악에 미숙한 것이 아쉽죠. 정치부의 여당 야당 반장, 국회 팀장, 청와대 출입기자, 정치부장, 경제부장, 사회부장, 특파원, 보도국장은 물론이고 과거 이름으로 교육, 상공, 복지, 국방, 재경, 대기업 출입처를 제대로 나가본 게 없으니까요.
시경, 법조, 서울시청이 제대로 맡아본 출입처의 전부입니다. 그럼 36년을 뭘 한 걸까요?(웃음) 주로 특집취재, 시사제작팀 지휘, 앵커, 지역근무가 6번, 그러다 건너뛰어 총괄본부장을 했으니 특이한 경력이기도 합니다."
- 기자는 항상 아이템 고민을 하잖아요. 기자님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좋은 아이템 잡는 비법 있을까요?
"아이템을 찾기 위해 즐겨찾기에 등록해 둔 곳들이 상당히 다방면으로 많습니다. 신문도 중앙지 지역신문을 두루 읽고, 전문지들을 환경, 여성 등등 여럿 읽고, 미디어비평지도 읽고, 종교신문, 대학신문도 읽습니다. 검색해도 뉴스 외에 웹 문서와 블로그도 읽고 특히 댓글들을 주의해서 읽죠.
가능한 광범위한 정보수집 작업을 오래 계속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융합의 능력도 생깁니다. 제 이름을 내건 <변상욱의 기자수첩>을 14년 정도 해왔는데 10년쯤 하니 조금씩 달라지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됩디다."
-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죠. 제가 방송 스튜디오에는 요약된 원고나 메모를 들고 들어가니 다들 몰랐을 텐데, 검색하고 읽으며 요약하고 다시 원고로 작성하는 작업이 늘 반복됐습니다. 펜으로 쓴 것만 A4 용지로 요약 정리한 것이 스무 장 정도 되죠? 50분 길이의 유튜브 용인데 이렇게 요약해 두고는 카메라 앞이니 원고 안 보고 방송하죠. 어떻게든 임무를 수행해 내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Practice! Practice!"
- 기자로서 보람은 뭔가요?
"기자의 보람은 주인공을 만나서 직접 듣는 게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의미 있는 현장에 가보는 것도 가슴 뛰는 일이고. 그걸 남한테 전해 줄 수 있다니 즐겁고, 그 결과로 세상이 조금 바뀔 때도 있으니 보람 있죠. 그게 어쩌다 일생에 한 번이 아니잖아요. 노력에 따라 때때로 벌어지니 정말 멋진 직업입니다."
"본령을 지키고, 멀리 보고, 흔들리지 말고, 늘 조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