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블라디슬라브 선생이 한창걸 선생의 처형과 관련된 재판 기록을 들고 있다.
김진석
2월 28일 오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소련 시절 지은 아파트. 다소 어두운 집안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는 책들과 장식품들, 그리고 벽에는 가족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주인공이 한 블라디슬라브(67) 선생이다.
그의 직업은
'고려 사람'이라는 사이트(https://koryo-saram.ru/) 운영자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동유럽, 러시아 등 고려인들의 소식들을 모아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를 한다. 하루 1500여 명의 방문자들이 찾아온다. '고려 사람'은 고려인에 관한 정보 사이트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한 블라디슬라브 선생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도 하다. 홍범도, 김경천 장군 등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하던 빨치산이었던 한창걸 선생(큰 할아버지)과 형제 한성걸 선생(할아버지). 두 분 모두 1937~1938년 당시 스탈린에 의해 처형 당했다.
한창걸 선생의 경우, 소련군에 징집돼 독일 전선에 참전한다. 그 뒤 군사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한다. 1918년 제대해 80여 명의 한인들로 구성된 빨치산 부대를 창설하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1921년에는 만주에서 연해주로 옮긴 독립군의 임시 군사위원회 군정위원을 지내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항일 운동을 하던 김경천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800여 명 규모의 항일 부대를 창설하고 사관학교를 만들었다.
이후 한창걸 선생의 부대는 1922년 '올가만 해방 전투' 등에서 전과를 올리고,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완전 철수 할 때까지 활동했다. 하지만 고려인 강제 이주의 해였던 1937년 수많은 인사들과 함께 숙청을 당한다.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추운 동토의 땅에 묻혔다.
한성걸 선생의 경우,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는 한창걸, 한성걸 형제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성걸 선생의 경우 직계 가족이 있어 훈장을 수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창걸 선생은 직계 가족을 10년 동안 찾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훈장 수여를 미룰 수 없어 올해 초 방계 손자인 한 블라디슬라브에게 대신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의 손에는 큰 할아버지의 훈장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