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와 '공화' 두 바퀴의 헌법제정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36회] 헌법초안 전문에 ‘3.1혁명’ 이 ‘3.1운동’으로 표기하게 된 까닭

등록 2019.03.09 17:48수정 2019.03.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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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9월 1일 관보에 실린 대한민국 헌법
1948년 9월 1일 관보에 실린 대한민국 헌법임병도
대한민국의 기본법인 우리나라의 헌법은 민주와 공화의 두 바퀴로 출범하였다.

1919년 3ㆍ1혁명 정신과 그 결실로 태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약헌' 등을 바탕으로 제정되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초대 민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당선된 의원들은 6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헌법기초위원 선임을 위한 전형위원을 각 도별로 1명씩 10명을 선출하였다. 그 전형위원들이 30명의 헌법기초위원을 선출하였으며, 사법부ㆍ법조계ㆍ교수 등 각계에서 권위있는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선임하였다.

헌법기초위원장에는 서상일이 선임되고 기초위원은 유성갑ㆍ윤석구ㆍ김상덕ㆍ허정ㆍ조헌영ㆍ조봉암ㆍ이청천 등, 전문위원에는 유진오ㆍ권승렬ㆍ윤길중 등이 선임되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6월 3일부터 22일까지 16차의 회의를 열어 유진오가 초안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문 10장 102조의 헌법안을 마련하여, 23일 국회본회의에 제출하였다.

헌법초안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약헌' 그리고 미군정시대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에서 마련한 헌법안, 1919년에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 등을 모델로 삼았다.

"바이마르 헌법은 그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민주헌법이었다." (오인석,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
  
 유진오.
유진오. 위키피디어백과사전
실무적으로는 유진오가 헌법기초위원회의 위촉으론 마련한 초안을 중심으로 심의되었다. 유진오는 초안을 작성할 때 임시정부의 약헌과 조소앙이 마련한 「건국강령」을 비롯하여 선진 각국의 헌법과 특히 독일 바이마르헌법을 많이 참고하였다.

제헌헌법은 심의 과정에서부터 정치세력간의 알력을 겪게 되었다.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고집하고, 한민당 측은 내각제를 선호하였다.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이 예상되면서 강력한 대통령제를 원하고, 한민당 측은 대통령은 이승만을 선출하되 실권은 자신들이 갖는 내각제를 바랐다.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합의한 헌법 초안은 내각책임제였다. 즉 상징적 대통령으로 하고 실권은 국무총리에게 부여하는, 국회에 의한 내각의 통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시안이었다.

이 헌법안은 6월 15일 국회의장 이승만이 돌연 헌법기초위원회에 출석하여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책임제가 적합하다"고 발언한데 이어 며칠 후 다시 나타나 "이 초안이 헌법으로 채택된다면 자신은 이 헌법하에서는 어떠한 지위에도 취임하지 않고 민간에 남아서 국민운동을 하겠다"고 통고하였다.


대통령제의 지위가 아니라면 정부 참여를 거부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이었다.

"이에 한민당 측은 고민에 빠졌다. 만일 김구ㆍ김규식에 이어 이승만 마져 정부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는 약체정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21일 밤 서상일ㆍ김준연ㆍ조헌영 등 한민당 측 중진의원들은 이승만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박찬승,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이승만의 권력욕에 따라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권력구조가 탈바꿈되어 6월 22일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채택되었다. 초장부터 '위인설관'의 비극적 운명을 타고 태어난 셈이다.

국회헌법기초위원회에 내놓은 유진오 헌법 초안의 제1조는 "조선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어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이어진다. 당시에는 아직 국호가 결정되기 전이어서 통상적으로 조선이라 불리고, 대체적으로 '국민' 대신 '인민' 이라는 용어가 널리쓰였다. 미국독립선언이나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 유엔인권선언의 피플이란 용어는 국민보다 인민에 더 가깝다.

국회본회의 헌법심의 과정에서 국호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일었다. '조선'이라는 국호와, 고종이 1897년 건원칭제를 단행하면서 채택한 대한제국의 '대한(大韓)'을 회복하여 광복하자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써야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결국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헌법기초위원 30명 중 26명이 참가한 투표 결과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로 '대한민국' 이 국호로 채택되었다.
  
제헌국회 국회의사록 권1의 표지 제헌국회 국회의사록에는 제헌헌법 초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3.1혁명'이라는 명칭이 '3.1운동'으로 바뀌는 사연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제헌국회 국회의사록 권1의 표지제헌국회 국회의사록에는 제헌헌법 초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3.1혁명'이라는 명칭이 '3.1운동'으로 바뀌는 사연이 그대로 담겨 있다. 대한민국 국회
유진오의 헌법초안 전문(前文)에는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한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이승만에게 혁명이란 용어가 과격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고칠 것을 주장했다. 이리하여 '3.1혁명' 이 '3.1운동'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제헌헌법은 이승만의 권력 야망으로 권력구조 문제에서 변질되기는 했으나 국민주권주의와 3권분립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진보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와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로 이어지는 헌법전문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방략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이란 대목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한다는 뜻이 담겼다. 최근 이명박ㆍ박근혜 중심의 수구세력과 어용언론인, 사이비 학자들이 1948년 8ㆍ15 정부수립일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무식하고 반 헌법적인가를 살피게 한다.

헌법전문에 나타나는 대한민국 국가건설의 기본정신은 ①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②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③민주주의 제도를 세우고 ④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여 능력을 발휘케하고 ⑤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선진 민주국가 어느 나라의 헌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특히 본문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임시정부의 헌장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며,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호와 정체의 규정에서 단순한 '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에도 없는 매우 독창적인 내용이다.
  
 아홉 번의 개헌 중에 두 번은 군사쿠데타로 네 번은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이 바뀌었다.
아홉 번의 개헌 중에 두 번은 군사쿠데타로 네 번은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이 바뀌었다. 임병도
훗날 박정희ㆍ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과 그 아류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남용하고, 최근 수구세력이 이 용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제헌헌법 정신은 일체의 관사를 허용하지 않은 '민주공화국' 즉 '민주주의' 공화국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관용사를 붙이면 정치적 불순성이 담보되기 마련이다. '행정적 민주주의', '민족적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따위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제헌헌법의 특장 중의 하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공화주의였다. '민주'가 정치적 민주주의라면 '공화'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경제적 민주주의는 임시정부가 채택한 조소앙의 삼균주의 즉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사상을 이은 것이다.

헌법전문의 중간 부분에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 하여 삼균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다. 또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현행헌법 제10조와 "모든 인간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제34조는 삼균주의 정신을 모태로 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마련된 제9차 개헌의 119조 1항은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적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제헌헌법의 경제적균등 정신을 뒤늦게 채택한 것이다. 박근혜가 '경제정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집권 후 폐기한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제헌헌법은 이승만의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3선개헌 등으로 장기집권의 장식품이 되었다가 박정희에 의해 헌정중단과 몇 차례의 변칙적인 개헌에 이어 유신헌법으로 송두리째 유린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전두환에 의해 또 한 번 짓밟혔다. 지금 다시 제10차 개헌이 논의되고 있다.

이번 개헌에는 전문에서 '3ㆍ1혁명'의 정명이 회복되는 것은 물론 의병전쟁이 추가되고, 촛불혁명으로 발현된 저항권의 신설, 3균사상이 기초한 경제ㆍ복지부문의 균등성 등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헌법제정 #유진오 #제헌헌법 #이승만 #헌법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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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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