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8년 미군 모병 포스터
미군 모병 포스터
토크빌(Tocqueville. 1997:59)은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개인들의 평등한 사회조건'을 꼽았다. 이러한 국내정치의 특징이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중시하는 시민의 기질적 요인에 더해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의 강한 연계가 미국 대외정책의 '아비투스Habitus'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개성 강한 국제정치 문법을 낳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고, 몸짓 하나 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금방 알 수 있게 해주는 행동거지로 정의했다. 이를테면 사람마다 다른 필체나 독특한 걸음걸이와 같은 것 말이다(Bourdieu, 2006:315). 미국 대외정책의 아비투스란 반복적이며 일관되게 등장하는 미국외교의 행위적 특징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주로 일방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 장점만큼이나 단점 역시 뚜렷한 편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아비투스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독트린으로 상징되는 외교원칙의 채택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건국 이후 대체로 불간섭, 중립노선을 유지했지만,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대외정책을 표방할 때는 먼로독트린, 트루먼독트린, 닉슨독트린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독트린 외교를 선보였다. 미국이 독트린 외교를 채택한 이유는 국내정치적 이유와 거의 동일했다. 건국 초기부터 정당 간 경쟁이 격렬했기 때문에 국민 다수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당도 반대할 수 없을 정도의 외교원칙을 공표해야 했다. 정당을 초월하는 초당적 외교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
둘째는 군사적 행동주의이다. 이것은 미국만 유독 외교 사안을 군사적 수단을 앞세워 해결하려 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2차 대전 이후부터 복잡다단한 국제정치 현안을, 군사력을 동원해 해결하려는 양상이 반복되고 두드러져 나타났기 때문이다. 2차대전기의 '무조건 항복론', 한국전쟁기의 '롤백작전', 베트남전쟁에서 무제한 확전을 초래한 통킹만 사건 등이 대표적인 군사적 행동주의 사례에 해당한다.
위의 관점에 입각해서 미국 대외정책의 키워드를 고립주의, 문호개방정책, 국제주의, 봉쇄정책 등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에 상응하는 한미관계의 키워드는 거중조정, 태프트·가쓰라 밀약, 신탁통치, 한미동맹이다. 다음 호부터 연재할 각각의 글들은 위 여덟 가지 키워드 사이의 조합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미관계의 동태적 변화과정에 대해 분석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한반도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해방 직후에는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키를 쥔 나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미국은 개항 이래로 지금껏 한반도에만 한정하여 단독의 정책을 수립한 적이 없다. 해방 직후 한반도문제의 해결책으로 미국이 제시한 '신탁통치안'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반도정책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럴 때조차 중국과 일본을 우선시하는 동아시아정책의 일부로 취급되거나 종속변수였을 따름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한반도문제와 결합coupling하거나 아니면 분리decoupling되는 식으로, 일련의 마주침과 헤어짐의 과정을 겪어왔다. 상식적으로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반도정책의 일치, 곧 미국의 강한 개입이 한반도문제 해결에 우호적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데 역사적 반전의 묘미가 숨겨져 있다. 이 점에서 이 기획은 기존 한미관계 가설을 상당부분 뒤집는 '전복적 해석학'에 속한다.
<참고문헌>
Bourdieu, P. 2006.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상)]. 최종철 옮김. 새물결.
Cumings. B. 2010. Dominion from Sea to Sea: Pacific Ascendancy and American Power.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Kennedy, P. 1989.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Economic Change and Military Conflict from 1500 to 2000. New York: Vintage Books.
Kissinger, H. 1994. Diplomacy. New York: Simon & Schuster.
Nordlinger, E. 1995. Isolationism Reconfigured: American Foreign Policy for a New Centu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Tocqueville, A. 1997. [미국의 민주주의 Ⅰ]. 임효선·박지동 옮김. 한길사.
<프레시안> 2018.06.15 "브루스 커밍스, 미치광이 트럼프가 옳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00486#09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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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 정치이론, 한국정치, 국제관계, 한미관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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