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의원이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았던 509호 조사실을 바라보고 있다. 2019.4.8
이희훈
-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경찰 스스로 또는 외부 전문가들이 모여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필요하다. 5.18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등이 사건 중심이라면 이곳은 장소 중심이다. 사건 중심은 범위가 넓고 관련자도 산재해 있다. 세월의 흔적과 함께 현장 증거가 훼손된다. 그에 반해 이곳은 독립된 장소이다. 근무한 사람들이 대단히 한정적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필요하다면 보호장치를 마련해 익명성을 보장해서라도 여기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갔는지 조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치가 600만 명을 학살했을 때 그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었다. 그들이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인류의 숙제였다. 이걸 알아내기 위해 예일대학교의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가 실험했다.
밀그램 교수는 거리에서 임의로 선택된 다양한 나이의 일반인 43명에게 교사 역할을, 배우에게 학생 역할을 맡겼다. 교사 역을 맡은 일반인에게는 학생이 답을 틀릴 때마다 버튼을 눌러 15V씩 점점 강하게 전기를 가하게 했다. 놀랍게도 250V 즈음 왔을 때 버튼 누르기를 거절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26명은 단 한 번도 끝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은 버튼을 누리는 것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그래서다. 남영동 대공분실도 어떤 메카니즘이 작동됐는지 규명해야 한다. 그 당시 경찰관들이 다 악마는 아닐 것이다. 경기도 경찰서 대공분실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마찬가지다. 내가 본 그들(경찰)은 참 착한 동료들이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집에 못 가서 걱정하고, 전화기를 붙들고 아이들을 걱정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범법과 범죄행위를 하도록 한 메카니즘은 무엇이고 그 정점에 누가 있었는지, 그리고 저항하거나 반항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 드러내야 한다. 피해자 관점에서 고문 행위에 대한 규명도 필요하지만 가해자 관점에서 그들(고문 경찰)은 누구였으며, 어떻게 해서 그런 짓을 했는지 규명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게 규명돼야 시스템과 제도에 의한,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가해자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파괴당했다."
- 지난해 '국가배상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국가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언제라도 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법안이다. 왜 이런 법안을 발의했나?
"정원섭 목사님도 내게는 빚쟁이 같은 분이다. 1972년 내가 6살 때 (정원섭 목사는) 춘천 역전 파출소장의 어린 딸을 강간해 살인했다는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경찰에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한 것이었다. 15년을 교소도에서 억울하게 있다가 가석방 형태로 나왔다. 주변에서 모든 사람이 이제 잊으라고 했으나 그 분은 그러지 않았다.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며 싸웠다. 주변에서 '강대한 국가와 왜 싸우려고 하느냐', '그러다 또 당한다'라고 말렸지만 어린 아들이 겪어야 할 평생의 고통과 상처를 위해 싸웠다. 극악무도한 살인범의 아들이라는 사회적 오명을 씻어주기 위해서 홀로 싸웠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과거사 위원회(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조사결과 엉터리 수사였던 게 드러났다.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체액과 정원섭 목사님의 혈액형이 달랐다. 애초부터 입건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빨리 잡아라' 호통치니 내무장관이 치안본부장에게 열흘 만에 잡으라고 지시하고, 다시 치안본부장이 강원도 경찰서 국장에게 '열흘 만에 못 잡으면 너 모가지야' 이렇게 해서 진짜 열흘 만에 잡은 것이다.
결국 이 사건 재심이 진행됐고 (정원섭 목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고 언론에 공개하면서 (정원섭 목사와) 인연이 생겼다. 경찰에선 거의 유일하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정원섭 목사님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을 위한 국가의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원섭 목사님이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해 1심에서 26억 원 배상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난데 없이 대법원에서 국가 배상 소송에도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양승태 사법농단과 연루돼 있는데, 딱 열흘이 지나서 (정원섭 목사는) 국가 배상을 받지 못했다.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어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재부(기획재정부)와 법무부도 설득하고 다녔으나 이 분(정원섭 목사) 한 사람만 아니어서 재정 당국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해 아직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했나?
"별로 한 게 없다. (지난해) 박종철 열사의 친구 분들, 선후배 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달라'는 거리 서명운동을 했다. 그때 (내가) 함께할 거라 생각 안 했나 보다. 아무래도 경찰 출신이니 '경찰 편 아니겠냐' 이런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근데 난 그렇지 않다. 옳고 그름이 더 중요하다. 더군다나 박종철 학형에게 개인적으로 혼자만이지만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서명 운동에) 함께했다. 당시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욕하며 소리를 질렀는데 그걸 다 받으면서 함께했다. 또 경찰청에 (남영동 대공분실을) 전향적인 사업으로 전환해 달라고 (국회) 상임위에서 질의하고 요구했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게 잊으라고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