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갇히면 못 나오는 감옥, 카사노바는 어떻게 탈옥했을까

[이탈리아 여행기 4] ‘탄식의 다리’에서 ‘감탄의 다리'로

등록 2019.04.11 08:20수정 2019.04.1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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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산 자카리아(S.zaccaria) 선착장 부근에 있는 탄식의 다리 모습 ⓒ 한정환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 산 자카리아(S.zaccaria) 선착장에 내렸다. 선착장에 내리면 베네치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탄식의 다리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건넜다는 '탄식의 다리'이다.

베네치아는 유명한 명소를 모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금방 표시가 난다. 탄식의 다리는 한마디로 다리라고 이름은 붙어 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이다.


이 탄식의 다리가 요즘은 관광객들이 모여 감탄을 하는 장소로 변모를 했다. 왜냐하면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악명 높은 감옥을 어떻게 탈옥했는지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감탄의 다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탄식의 다리 오른쪽에 있는 악명 높은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 입구 모습 ⓒ 한정환

   
탄식의 다리 왼쪽은 두칼레 궁전이고, 오른쪽은 악명 높은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이다. 두칼레 궁전 안에도 감옥이 있었다. 피온비 감옥이다. 중죄인들이 많으면 두 군데 감옥을 옮겨 다니며 투옥 생활을 시켰다고 전해진다. 중죄인들은 두칼레 궁전 '10인의 평의회'에서 재판을 받고, 이 탄식의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투옥되었다.

죄인들은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창문을 통해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할 이 다리를 건너면서, 긴 한숨을 내쉬며 탄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탄식의 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감옥에 투옥되면 햇빛을 전혀 볼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한번 투옥되면 다시는 나올 수 없고, 저절로 이곳에서 자연사한다고 하는 악명 높은 감옥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여기에 투옥되었다.

카사노바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조반니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Giovanni Giacomo Girolamo Casanova de Seingalt)이다. 이름도 특이하게 길어도 너무 길다. 18세 때 이미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머리가 명석했다고 한다.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외국어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어학, 철학, 문학, 의학 등에 능통한 만능 지식인이었던 카사노바는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여성들에게 접근, 달콤한 화술로 그들을 유혹하였다고 한다.
 

산 자카리아(S.zaccaria) 선착장에 내려 탄식의 다리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관광객들 모습 ⓒ 한정환

   
광대이었던 부모님 밑에서 오직 신분상승의 길을 모색하다가 전공인 법학의 길을 포기한다. 신분 상승의 길을 걷기 위해 교회 사제나 군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당시에는 신분상승의 길이 교회 사제 아니면 군인이 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후에 선택한 길이 사제이다.


사제로 신앙에 열중하다가 큰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사제 신분을 망각하고 두 자매를 동시에 탐하다가 문란한 사생활로 처벌을 받게 된다. 죄명은 '문란한 사생활'이었다. 그래서 악명 높은 두칼레 궁전 피온비 감옥에 투옥된다. 카사노바는 1년 6개월간의 암흑 같은 투옥생활 중 탈옥에 성공하여 프랑스로 망명을 하게 된다.

카사노바는 투옥 생활 중 아무도 탈출할 수 없다는 악명 높은 감옥을 탈출하면서 교도소장에게 남긴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 역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노라'는 메모를 남기고 탈출을 하였다고 한다. 탈출하는 사람이 과연 이런 메모를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부호가 남는다.

그는 비록 이탈리아에서는 문란한 사생활로 투옥되었지만, 프랑스에 망명하고부터는 친구의 도움으로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 루이 15세를 만나 왕실 재건에도 힘을 쏟았다고 한다. 카사노바는 왕실 재정난 해소를 위해 복권사업 등을 펼쳐 그의 천재성을 여지없이 발휘하였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루이 15세로부터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베네치아 산 자카리아(S.zaccaria) 선착장 주변 모습 ⓒ 한정환

   
베네치아에서는 카사노바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하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며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 플로리안이다. 카사노바는 여기에서 유명 인사들과 교류의 폭을 넓힌다. 친구들과 만나 도박을 즐기고 밀회를 위해 달콤한 맛의 핫초코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

또 한 곳은 카사노바가 수녀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의 발자취를 남기고 염문을 뿌리며 다녔다고 전해진다.

자서전이란 돌직구를 던지는 내용도 있지만 자기를 미화하는 내용이 다분히 많이 적혀 있어 진정성을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여자들을 사랑했고, 그보다 더 자유를 사랑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 여자의 남자가 아닌 자유분방한 생활을 더 즐겼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자서전 내용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카사노바는 122명의 여인들을 농락하고, 화려한 언변으로 여인들을 유혹하여 사랑을 나눈 희대의 바람둥이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참고서적 : 1)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 아르투어 슈니출러 지음, 모명숙 옮김(문학동네)
2)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 백찬욱 옮김(휴먼앤북스)
#탄식의 다리 #산 자카리아 선착장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 #피온비 감옥 #카사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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