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사 전시관 벽면 -김병화 콜호즈고려인 이주사 전시관 벽면 -김병화 콜호즈
고려인너머
1956년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에 묶어둔 거주이전 제한 조치가 풀린다. 이때부터 학업 등을 이유로 러시아 본토로 떠나는 고려인이 급증한다. 1970년대가 되자 중앙아시아에서 농사짓는 고려인 인구는 많이 감소한다. 전체 농업 비율이 줄어든 이유도 있으나, 고등교육을 받은 다음 세대가 콜호스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직업을 택해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콜호즈와 함께 고려인 공동체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1980년대 생인 최이야나씨는 자신이 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를 해준다. 최씨의 가족도 도시로 갔다. 그곳엔 고려인이 별로 없었다.
"학교 처음 갔을 때, 어머니가 '교실에 한국인이 있니?'라고 물었어요. 한국인이 뭔데라고 물으니까. 머리도 우리처럼 까맣고 눈도 까맣다는 거예요. 다른 민족에도 머리 까만 애들 있어서 내가 다 세었어요. 엄마가 '그게 아니라 성이 김, 박 이렇게 된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한국인이다'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최씨는 한국에 온 후 한국어를 배웠다. 그가 태어나기 전인 1970년에 소련 교과과정에서 한국어 교육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배울 기회도 없었지만 당시 젊은 세대에게 한국어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 러시아 사회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다음 세대의 목표였다. 한국과 교류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들에게 한국어는 실리가 되지 못했다. 2016년 재외동포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고려인 중 34%가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어 몰라요?
한국에 온 이들은 '왜 한국말을 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생존을 위해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 30년을 정착해 산 연해주는 러시아 한인들의 고향이 되고 항일운동의 거점이 됐다. 그러나 1937년 강제이주로 그곳을 떠나야 했다. 17개의 언론사, 380여 개의 고려인 학교를 두고 왔다. 사범대학을 만들고 정치조직을 형성하고 민족자치구를 요구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같이 버려두고 왔다.
중앙아시아에 와서 땅만 보고 살았다. '노동 영웅'이라는 칭호는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자 동시에 극심한 노동을 말해준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다르게 살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다르게 살 기회란 소련 사회로 편입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능숙한 러시아어와 높은 교육열이 이를 말해준다.
"한국어 몰라요?" "한국어 배운 적 없어요?" 한국은 고려인들에게 쉽게 질문한다.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를 듣는 일을 거듭할수록 질문이 조심스러워진다. 삶이 도돌이표처럼 무너짐과 복원을 반복해온 이들에게 정체성과 문화, 전통은 쉽게 질문하기도 쉽게 답을 얻기도 어렵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 교수 <예민 난민 위기를 통해 본 인종화와 신인종주의>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양한 시공간에서 자신의 문화를 수정, 갱신, 포기"하며 "변화하고 유동적인 삶의 전략을 만들어"낸다. 한반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 또한 그러하다.
잡초 같은 삶이 한국에 오다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정착 과정은 '역경을 딛고' '고난을 이겨냈다'고 할 만하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작가 김블라지미르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블라지미르 김.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사. 2000)
"고려인들은 잡초와 같아 베어버리면 살아나고 베어버리면 다시 살아난다."
강인하다. 그런데 우리가 강인한 역사에서 정작 배울 것은 누구도 베어지는 잡초 같은 삶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고려인들이 세대를 거쳐 만들어낸 생존 전략과 그 역사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문제가 시작된다. 이들이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199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이 해체하고, 이들의 거주지는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독립국가연합으로 변모했다. 2007년, 한국 정부는 고려인들에게 방문 취업 비자를 허용한다. 또 다른 이주가 시작된 것이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펀딩 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게재되고 있습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는 연해주 등지에서 이뤄진 고려인의 항일항쟁 역사를 대한민국 땅에 적어내리는 기록입니다. 낯선 땅에서 굴하지 않고 삶을 지켜낸 이들, 더 나아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러나 이름 없이 잊힐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작업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5만 명의 건립자가 되어주세요.
- 고려인독립운동 국민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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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도 되살아나는 잡초처럼? 그런 삶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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