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마창거제산추련
흔히 '물량팀', '돌관'이라고 불린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흔히 '물량팀', '돌관'이라고 불린다. 저마다의 이유로 전국 각지에서 조선소로 들어와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박철희씨 이야기가 가슴 아프다. 그는 부상자 25명 중 한 명이면서 유가족이다. 사망자 여섯 명 중 한 명이 그의 동생이다. 그리고 그는 이 참사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산재로 첫번째 인정을 받았다. 그의 구술을 들어보자.
"가장 억울하고 화가 나는 건 이거예요. 삼성에서 피해자들에게 사과라도 한번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언론에 고개 숙이긴 했지만 유가족들에게는 사과한 적이 없어요. 박대영(삼성중공업) 사장이 장례식장으로 한번 찾아왔는데 왕의 행차인 줄 알았어요. 임직원들을 줄줄이 데리고 호위 받으면서 들어왔어요.…
많은 분들이 다치고 돌아가셨잖아요. 트라우마 치료 받는 분들은 일상생활도 못하고 1년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계세요. 그분들 연락처도 알 텐데 전화라도 해서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사고에 대해서 마음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 말 한마디면 되거든요. 뭘 많이 바라는 거 아니에요. 돈을 억만금 준다고 제 동생이 살아오겠어요?"
사고 당시를 떠올린 그는 "왜, 그 때 크레인이 넘어질 그 자리에 우리가 앉아 있었을까요. 그냥 혼자 상상해 보는 거지만 그날 아침 알람이 안 울렸으면, 울렸더라도 둘 다 일어나지 않아서 결근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했다. 박씨의 동생한테는 아이 셋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 만날 때 '저는 몇 년생이고, 몇 살이에요' 이렇게 소개하잖아요. 그러나 문득 동생은 마흔다섯 살로 멈췄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한테 동생은 영원한 마흔다섯 살이구나.' 내가 팔십이 돼도 동생은 여전히 마흔다섯이겠지요."
"잠들기가 무서웠어요"
심리검사에서 가장 안 좋은 상위그룹에 뽑혔던 김석진(가명)씨는 "잠들기가 무서웠어요"라고 했다.
"사고 후 한 달 휴업 기간 끝나자마자 다시 일했는데 일하다가 도망친 적이 있어요. 옆에 계신 동료 위로 뭐가 떨어져서 그 분이 손을 살짝 찧었는데 피가 많이 났어요. 그걸 보니까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더라구요. 견디기 힘들어서 현장에 말없이 사라졌어요."
사고 이후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겼었다고 한 그는 "사고 나고 조선소 기숙사에서 나왔어요. 기숙사에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는 산재 인정과 관련해서도 마음의 상처가 크다.
"산재 인정받고 보험금 받는 데 딱 1년이 걸렸어요. (근로복지)공단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요. 저를 담당했던 과장 그 사람은 아직도 이름을 기억해요. 그 사람이 그래요. '석진님, 산재가 된다고 해서 경제적인 혜택도 못 볼 거고 뭐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없어요. 아프시다면서 지금 일은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제대로 출근도 못하고 약 먹으면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그 사람이 전화 끊으면서 그러는 거예요. '목소리는 되게 건강하게 들리시네요.'"
김석진씨는 "산재 승인이 났다고 대책위에서 연락이 왔어요, 소식 듣고 울었어요.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 펑펑 울었어요"라고 했다.
여성이면서 도장을 맡았던 이정은(가명)씨는 조선소의 힘든 현장부터 이야기하면서 '혼재 작업이 일상화'라고 했다.
"사실 대형 사고도 예방하려면 내가 봐서는 원리원칙을 따져야 하는 게 맞고, 작업 시키는 것도 원리원칙대로 해야 하는데, 공사 기간을 빠듯하게 잡으니까 그게 안돼. 크레인 사고는 건설 현장에서도 많이 나잖아. 그런 거 보면 솔직히 뉴스에 딱 나올 때뿐이지 자기하고 직접 관련 없으면, 또 관련 있어도 대부분 딱 그 때뿐이야."
"한 회사(하청)에서 한 블록씩 딱 맡아서 일을 하면 일이 체계적으로 될 텐데. 이게 한 회사가 아니야. 몇 층은 A사, 몇 층은 B사, 몇 층은 C사 …. 이렇게 다 다르니까 회사마다 작업 내용이 다 다른 거지. 그래 아래층에 죽어라 페인트 발라놨는데 위에서 에어를 불어. 그런 우린 어쩌라고? 나중에 페인트 다 긁어내고 도장을 다시 한다니까."
김명진(가명)씨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흔히 조선소 일을 '3D 업종'이라고 하잖아요. 이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크레인 일, 조선소 일,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한 걸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젖어 들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처벌이 명확했으면 좋겠어요. 책임도 명확했으면 좋겠어요. 피해자에게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피해자는 있는데, 피해자는 힘든데, 가해자는 아무 책임이 없잖아요. 일 시킨 사람은 처벌 안 받고, 시킨 대로 일한 사람들만 처벌 받아요. 하청 하청 하청하는 그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 때 하청 받아 일했던 사람들만 힘들어해요. 그건 다 우리 노동자들인데 말이죠."
진영민씨는 "조선소 일이 그래요. 일이 몰릴 때만 사람을 단기로 뽑아요. 3개월짜리 '돌관'을 쓰는 거죠"라며 "심지어 한 달만 쓰는 데도 있어요. 조선소가 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해요"라고 했다.
진씨는 "사고는 규칙을 어겨서 나는 것"이라며 "평소대로 규칙을 지켰으면 사고가 안 났을 건데 규칙을 어긴 거잖아요"라고 했다.
현장의 '관행'을 말한 김종배씨는 "'오늘까지 (작업을) 끝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밑의 사람은 안 잘리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고요"라며 사고 후에도 하청업체에서 삼성중공업 눈치를 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웬만하면 없었던 일 비슷하게 하자는 분위기랄까"라고 했다.
"그래도 삼성은 안전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을 쓴다. 그래서 사고도 덜 나겠지 생각했는데, 요번에 사고 나는 거 보고는 우스갯소리로 그랬어요. '여기는 짠짠한 사고는 안 나는데 아예 한 방을 터뜨리네.' 그런데 짜잘한 사고도 없지는 않았을 거 같애. 회사에서 쉬쉬하는 거겠지"(신영호(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