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없애고 종신형? 다시 불붙은 사형제 폐지 논쟁

[현장] 인권위, 사형제-대체형벌 청문회... '국가보안법상 사형' 폐지에는 양측 합의

등록 2019.05.03 21:09수정 2019.05.0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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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인권위에서 열린 '사형제 및 대체형벌 청문회'에서 전문가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 김시연

 
"30여 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남편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한번 집행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게 사형입니다."

"고귀한 생명을 무참히, 잔인하게 목숨을 끊어놓고 살려둔다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을 죽였으면 (살인범) 본인도 사형시켜야 합니다."


44년 전 이른바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남편 고 하재완씨를 잃은 '사형제 피해자' 이영교씨, 8년 전 아내가 살해당한 '범죄 피해자' 장성환씨. 두 사람 모두 소중한 가족을 잃었지만 사형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사형 대체 '종신형' 도입은 꼼수" vs. "사형제 만큼 효과 있어"

EU를 비롯해 전 세계 106개국이 사형제를 없앴고, 한국도 지난 1997년 이후 2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사형폐지국가'지만,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3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사형제 및 대체형벌 청문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3시간 내내 평행선을 달렸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지난해 '사형제도 폐지 및 대체형벌에 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형제 폐지와 대체형벌에 대한 인권정책 권고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에서도 사형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80%에 달했고,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0%에 그쳤다. 사형제 폐지 의견은 지난 2003년 조사 당시 34.1%보다 오히려 14%포인트 정도 줄었다.


사형제 국민 인식 조사를 진행했던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가 대중매체에 의해 증폭돼 사형제 존치 의견이 표면적으로 증가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사형의 형벌 효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가 있어 사형 존치를 표면적으로 찬성하지만 상황과 조건을 달리하면 변화될 수 있는 유동성을 보인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오판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에 절반이 넘는 53.9%가 동의했고, '사형제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형벌이 도입되면 사형제를 폐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 66.9%에 달한 점을 들었다.

현재 사형제 대체형벌로는 기존 무기형과 달리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나 가석방 요건을 강화한 '상대적 종신형'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사형제 유지 쪽 전문가들은 대체형벌은 사형제 폐지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일 뿐, 사형제 못지않은 위헌적,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반박했다.

사형제 유지 쪽인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사형제 대체형벌인 (절대적) 종신형은 형기 단축이 허용되지 않는 자유형"이라면서 "독일도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 제도로 바꿨지만 감형 요구와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형제 폐지론자들도 절대적 종신형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사형제 폐지를 위해 전략적으로 도입하려는 것"이라면서 "대체형벌을 도입하고 사형제를 폐지하는 방안에 관해 섣불리 여론조사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반면 사형제 폐지 쪽인 한영수 교수는 "개인적으로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이유는 오판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면 생명을 다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가 생명을 박탈한 권한이 있는가"라고 따졌다.

한 교수는 "지금은 사형 선고해도 집행되지 않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법무장관이 사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면서 "사형 선고 받은 자에게 종신형이 선고돼 사형제만큼의 효과가 있다면 폐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옛 일" vs. "오판-정치적 악용 가능성 여전" 

이에 사형제 유지 쪽인 이재교 세종대 법학부 교수(변호사)는 "오판으로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하는 건 형벌의 불가피한 속성으로, 사형제뿐만 아니라 징역형에서도 발생한다"면서 "오판 가능성 때문에 사형제를 없애자는 건 교통사고 사망자를 없애겠다고 운행 속도를 크게 줄이거나 자동차를 아예 없애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정치적 악용은 사형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비민주적인 권력의 문제"라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사형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사라졌고 사형 선고된 사건이 오판으로 밝혀진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이 교수는 "사형제 폐지로 살인 범죄가 증가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추가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폐지 헌법 소원을 제기한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사형 판결에서 오판 가능성은 다른 형사 재판과 달리 '생명권의 박탈'이란 측면에서 더 중요하다"면서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예전 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형 확정 받은 일반 형사 피고인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도 있고, 2000년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도 5번 재판 거쳤는데 유무죄에 대한 법관 판단이 계속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한 법률 개정이나 개헌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헌법재판소와 인권위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6년과 2010년 사형제 위헌 심판에서 각각 7(합헌) 대 2(위헌), 5대 4로 결국 사형제 유지쪽 손을 들어줬지만 그 사이 위헌 의견이 늘었다. 최근 교체된 헌법재판관들도 사형제 손질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안법상 사형' 폐지에는 존치론자도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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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인권위에서 열린 '사형제 및 대체형벌 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김시연

 
이날 사형제 존폐론자들 사이에 나름 합일점을 찾기도 했다. 사형제 폐지쪽인 김준우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변호사)은 이날 "사형제 유지 쪽에서는 오판 가능성을 쉽게 넘어가는데, 나는 세상이 변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정치적 반대파를 사법 살인하는 방식으로 악용된 대표적 형벌인데, 정치적인 부분에는 사형제를 폐지하는 데 동의하나"라고 존치론자들 의견을 물었다.

이에 존치론자인 이재교 교수도 "30년 이상 정치적으로 사형이 선고된 일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면서 "국가보안법 법정형 사형 폐지에 찬성하고, 사람을 죽이는 복합 범죄 유형에 대해서만 사형을 법정형으로 유지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강호순 사건 등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이종찬 안양지역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은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 안 하려면 피해자들에게 반환해야 한다"라며 사형제 폐지에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 사무처장은 "민주화운동하다 국가권력에게 피해를 당한 분과, 일반 살인 사건에서 흉악무도한 인면수심의 범죄자에게 피해를 당한 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비교해서 사형제 존폐나 대체형벌을 논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사형제 존치나 폐지 입장 모두 국민의 안전과 인권보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이런 중요한 가치들은 국민의 정서나 국제사회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의미하는 인권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며, 대체 형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사형제 폐지 쪽에 무게를 실었다.
#사형제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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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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