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땟골마을 풍경안산시 땟골마을 풍경
고려인지원센터 고려인너머
승합차에서 고려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내려 무리 지어 걸어간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아 보인다. 여성 노동자들은 공단 내 부품업체에서 일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들이 주로 하는 작업은 도금, 염색, 납땜 등이었다. 열을 가하고 흄(가스)이 나오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여성 고려인 노동자 중 한 명인 소냐는 한국에서 일을 구한 첫날 바로 야간 잔업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한 탓에 직장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생 첫 직장에서 첫날부터 하는 잔업이라. '안 힘들었어요?'라고 물으니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무엇이 괜찮은 걸까.
최저임금 일밖에 없다
2007년 구소련 지역 동포들에게 방문취업비자(H-2)가 발급된 후 국내 고려인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출입국관리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4만 명이라 추정되던 수가 5년 사이 2배 넘게 늘었다. 안산 땟골마을, 광주 고려인마을(월곡동) 등 공단 인근 저렴한 주택가에 자신들만의 거주지도 형성했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F-4)도 있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50% 이상이 방문취업 신분이다. 재외동포비자는 발급기준이 대학졸업자, 법인기업대표, 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등으로 한정돼 취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비자를 받았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고려인 대부분은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 그런데 재외동포비자는 국내 취업질서 유지를 이유로 단순노무직 취업을 금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이 단순노무직밖에 없어 비자를 숨기고 몰래 일한다.
한국은 이들의 학력도, 러시아에서 익힌 기술도 모두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에 고려인들은 '공장에 가면 뒤에는 교수, 앞에는 박사, 옆에는 음악가가 있다. 떠나온 나라에서 직업이 무엇이었든 지금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진다.
한국인 빼고 다 똑같아요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배울 새도 없이 취업부터 한다. 강제이주 세대 부모들이 짐 보따리 한두 개를 가지고 중앙아시아로 간 것처럼 한국에 온 이들도 번번한 세간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 낯선 곳에선 모든 것이 비용이다. 돈부터 벌어야 하는 현실 탓에 언어를 배울 기회는 멀어지고 파견·일용직 굴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직장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니 한국 거주 10년 차인 따냐가 말한다.
"한국인 빼고 다 똑같아요."
무슨 말일까. 직장 동료 대부분이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라 했다. 한국인은 얼마 없다.
"한국인 빼고는 무시당하는 거 다 똑같아요."
같이 일하는 친구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언어가 미숙한 그 친구는 지금 공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한다고 했다.
"힘든 거 시켜요. 자기들 하기 싫은 거."
여기서 말하는 힘든 일이란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근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육체 작업을 뜻한다. 그래도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가 서로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한국식'으로 일해야 하는 것.
소련 집단농장에서 목표를 몇 배나 초과하는 수확량을 내며 놀라운 노동 능력을 보여주던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맞았다.
"러시아에서처럼 일하면 안 돼요."
컨베이어벨트 속도는 국적 상관없이 평등하게 빠르다. 지난 2년간 전자회사에서 일했던 레라는 이렇게 말했다.
"쉬는 시간 하나도 없어요. 부품이 30초마다 나와요. 그런데 기계가 3개. 제품 넣고 스타트 누르고 두 번째에 넣고 스타트 누르고. 3번째 기계하고 나면 첫 번째 기계에서 (완성제품) 나오고 있어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런 속도로 일해본 적 없다. 그렇게 일했는데 월급날마다 임금 계산이 안 맞았다고 했다. 잔업수당 등이 늘 적게 계산되어 나왔다.
"돈 (더) 달라는 말을 사무실에 가서 매달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자존심이 상해요. 한두 번도 아니고 실수로 보기 어렵죠. 매달 안 맞았으니..."
말이 서툰 이들이 월급 액수를 따지러 사무실로 매번 찾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을 제대로 못 해 손해도 많이 봤다고 한다.
3명 중 한 명은 억울한 일
"친절해요."
한국에서 살기 어떠냐고 물으면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다. '한국 사람 친절해요?'라고 되물으면 "러시아에서는 상점에 물건을 사러 가도 퉁명스러운 대접을 받고 온다"고 답한다.
상업적인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냉한 표정 앞에 고려인들은 '내가 설마 소수민족 동양인이라서 그런가'하는 의심을 한다. 이어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의문이 든다. 한국 사람은 친절한데 왜 일터에서는 친절을 보기 힘든 걸까? 한국에 온 첫 달에 임금체납을 당했다는 아냐도 '친절한 한국'을 포기 못 한다.
"세상에 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그냥 내가 안 좋은 곳, 안 좋은 사람을 만난 거라 생각하고 말아요."
과연 그럴까.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고려인 응답자 중 30%가 부당해고, 27%가 임금체납을 경험했다. 3명 중 1명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부당해고 사례를 보자. '10년간 일하며 마음에 맺힌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따냐는 "말대꾸 했다"며 해고된 일을 꼽았다. "불량이 났다고 욕을 해서 서툰 한국말로 해명을 했는데 관리자가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 나가야 했다"고 했다.
"당일 해고가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할 수 없었어요. 말을 못해 참을 수 밖에 없었죠."
말을 못한다는 건 언어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말 못할 처지 또한 포함된다. 이주노동자가 아니었다면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못하고 가만히 당하기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