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해군 '성폭행 사건', 그 좁은 격실 가봤더니

[현장] 군인권센터 서울함공원 방문 행사 열어... 참가자들 탄식 "피해자에 공감"

등록 2019.05.11 12:33수정 2019.05.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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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의 침실이자 업무 공간. ⓒ 유지영



침대에서 책상까지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보통 함정(군사용 배)의 격실은 사적 공간인 침실과 공적 공간인 사무실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고시원 방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컸다.

격실을 지나 복도로 나가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로가 나온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몸을 틀어서 서로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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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의 가파른 계단. ⓒ 유지영


해군들은 한 번 출항하면 길게는 3주 정도를 이렇듯 좁은 공간을 공유하며 망망대해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 시간 동안 이들에게 함정은 벗어날 수 없는 사회나 다름 없다.

물론 함정에서 내리더라도 '군인'이라는 의식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배 안에 있는 것과 같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여군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인 여군은 120~130명 정도 머물던 함정 내부의 유일한 여성 군인이었다.

군인권센터, 서울함공원 방문 행사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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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함의 외부 모습. ⓒ 유지영


고등군사법원은 지난 2018년 11월 성소수자 해군 여성에 성폭행을 가한 것으로 지목된 해군 상관 2명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각각 1심에서 징역 10년(포술장)과 8년(함장)으로 나왔던 결과가 완벽히 뒤집혔다(관련 기사 : '부하 해군 성폭행' 2심서 무죄 나와 http://omn.kr/1dnph).

10일 오후 군인권센터와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울함공원 방문 행사를 기획했다. 10여 명의 참가자들은 서울함 내부를 둘러보고 피해자 여군에 공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마포구 망원한강공원에 위치한 서울함공원 서울함 내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탄식했다. 비록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던 배와 종류는 다르지만 함정 내부는 대체로 구조가 유사하다는 게 군인권센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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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의 방혜린 활동가가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의 개요와 함선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지영




한 참가자는 "이런 환경에서 피해를 입어도 밖은 바다뿐이라 도움을 요청할 공간도 사람도 없다"며 "오직 군 내의 상관에게만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 본인이 책무를 방기하고 그 위력을 이용한 것이 더욱 화난다"는 감상을 남겼다.

피해자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함정 포술장에게 밝히자 "남자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말하며 성폭행과 지속적인 성폭력을 가했고 이 피해 사실을 함장에게 알렸으나 함장 역시 자신을 성폭행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실제로 방문해 함정을 살펴보니 피해자가 오랜 시간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것이 2010년이라는 점을 들어 사건이 발생한 지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았다.

"함정 내부,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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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주최한 관련 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플래카드에다가 재판부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한 참가자가 성소수자 여군과 해군 상관을 '연인 관계'라 말한 2심 재판부에 항의하고자 '연인 관계가 아니다. 위력 관계다'라고 적었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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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주최한 관련 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플래카드에다가 재판부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 유지영


군인권센터의 방혜린 활동가는 서울함 방문에 앞서 "포술장의 경우 자신의 사무실을 주요 범행 장소로 썼다. 함정은 침몰에 대비해 사무실을 좁고 폐쇄적으로 만들어놨다"며 "함정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방 활동가는 "당시 피해자는 함정에 처음 탄 지 1년도 되지 않았던 상태로 여군으로서 가진 대표성이나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이라며 "함장에게 많은 걸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앞서 서울함 방문을 모집하며 "해군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강고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고, 추행 피해가 주로 발생한 함정은 아주 좁은 격실로 구분되어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분노하는 분들과 서울함공원에 방문해서 함정의 특성을 살피고 사건 쟁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행 #서울함공원 #해군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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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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