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책 표지
시공주니어
아이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못된 부모를 둔 소녀 마틸다. 그런데 마틸다는 세 살 때 스스로 읽기를 터득하고 그 이듬해엔 마을 도서관에 다니며 고전 문학작품들을 모조리 독파할 정도로 똑똑합니다.
사기를 쳐 돈을 벌면서 그것을 자랑하는 아빠에게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한 아이이기도 합니다. 마틸다는 자신을 막 대하는 아빠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당찬 아이입니다.
현실에선 아이가 어른을 골탕먹이는 것이 무척 어렵겠지만 이야기 속에선 가능합니다. 마틸다는 아빠 모자에 접착제를 듬뿍 발라놓기도 하고, 친구에게 앵무새를 가져다가 부엌 벽난로에 숨겨놔 유령이 있는 것처럼 해서 아빠 엄마를 골탕먹입니다. 샴푸통에 과산화수소를 넣어서 아빠 머리가 탈색되게 하기도 합니다. 깜짝 놀라 허둥대는 부모를 보며 마틸다는 통쾌해 합니다.
마틸다의 부모만큼 못된 건 아니지만 가끔씩은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를 제지하는 아빠를 보면 제 딸도 저를 골탕먹이고 싶을 때가 있겠지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는 하면서 나는 왜 못하게 하는데?"라는 말을 들을 땐 참 난처합니다.
곤란해 하는 제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는 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면 제 딸도 마틸다처럼 통쾌하겠죠? 아이 앞에 떳떳한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딸 교육에도 관심이 없는 부모 탓에 마틸다는 또래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마틸다는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주는 담임 하니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은 마틸다의 총명함을 알아채곤 마틸다의 성장을 위해 교장선생님과 마틸다의 부모님에게 마틸다의 천재성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니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자세히 관찰하고 마틸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관계를 맺어갑니다.
집안의 폭군이 아빠였다면 학교에서의 폭군은 트런치불 교장선생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수업 중 트집을 잡아 아이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해머던지기를 하듯 아이들을 던져버리는 무지막지한 사람입니다.
교장선생님의 폭력에 맞서 선생님을 골탕먹이려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호된 반격을 당하곤 합니다. 친구 중 하나가 교장선생님 물컵에 도마뱀을 넣어 골탕먹이려 할 때 마틸다는 자신에게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틸다는 물컵과 함께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비밀을 마음 속에 꼭꼭 감추고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틸다가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기이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롭고 이해심 많은 어른이었다."(171쪽)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도 놀랐던 마틸다는 고민 끝에 자기 재능을 알아봐줬던 하니 선생님에게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마틸다를 매우 많이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임에도 선생님은 가능하면 마틸다를 이해하려는 쪽으로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믿을 수 밖에요. 이 일을 통해 마틸다와 하니 선생님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하니 선생님도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마틸다에게 말합니다. 불행한 인생사가 모두 하니 선생님의 이모인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으로 온 것이란 사실을 안 마틸다는 복수를 결심합니다.
마틸다는 하니 선생님의 복수를 위해 생각으로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도록 열심히 연습합니다. 물건을 자신의 마음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마틸다는 드디어 하니 선생님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복수를 감행합니다. 하니 선생님의 이모인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이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폭로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합니다.
책에 나오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 극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관심한 마틸다의 아빠와 엄마, 서슴없이 아이들에게 폭력(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언어 등의 억압)을 휘두르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제게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제압하려는 욕구가 제 마음 한구석에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틸다의 재능을 알아채고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하니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억압과 위협에 쫄아 위축되어 있을 때도 많은데 마틸다처럼 쫄지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도 갖추고 싶어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마틸다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들로부터 의외의 위로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마틸다 (반양장) - 개정판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시공주니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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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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