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집단 매장지인 일본 '휴가 묘지'에 통일촌 회원들이 한반도기를 꽂아 놓았다.
윤성효
"동포들이 묘비는커녕 무덤도 없이 지하에 묻혀 있다. 이대로 둘 것이냐.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해달라."
지난 25일, 일본 후쿠오카현 타가와시 소에다조 오아자의 휴가(日向) 묘지를 찾은 재일교포 이성근(66)씨는 '강제징용 유적지 답사'에 나선 '통일촌'․'통일엔평화' 회원들한테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휴가 묘지'는 글자 그대로 '휴가' 성을 가진 일본인들의 집단 무덤이다. 일본인들이 시신을 화장해서 화강석 납골묘를 만들어 조성해 놓은 일종의 '공동묘지'다.
일본인 묘는 화강석으로 반듯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일본인들이 기르다 죽자 매장한 개고양이 무덤이 있고, 이른바 '동물 묘비'까지 있다.
그런데 일본인 묘 사이에 돌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석탄과 함께 반출된 암석인 '보타석'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 이름 모를 조선인 징용자들을 묻었고, 돌로 표식을 해놓은 것이다.
이곳에 묻혀 있는 조선인 징용자는 모두 37명이다.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타가와 지역 탄광에서 일하다 죽으면 유골을 몰래 가져와 이곳에 묻었고, 그 표식으로 돌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제법 큰 나무 둥치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전남'과 '망자'라는 한글이다. 나무가 작았을 때 누군가 새겨놓았는데 자라면서 글자 또한 커지게 보이는 것이다.
이성근씨는 "탄광 사고 등으로 죽은 조선인들을 산에 던지고 메운 뒤 돌을 얹어 놓았다"며 "이같은 사실은 해방 이후 주변에 살았던 일본인 할머니가 증언해 주어 알려졌다"고 했다.
그는 "개와 고양이도 무덤이 있고 묘비까지 있다. 그런데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나무에 새겨진 글자 '전남'을 가리키며 "아마도 전남 출신이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으면 나무에 이렇게 글자를 써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성근씨는 "진짜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열심히 살았으면 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촌 회원들은 조선인 무덤의 표식인 돌 옆에 가지고 갔던 한반도기를 꽂고, 묵념하며 고인의 넋을 달랬다.
통일촌 박광수 회장은 "조선인 유골을 빨리 수습하고, 새로 무덤을 만들고 모셨으면 하고, 이곳에 위령비를 세웠으면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