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6월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86세대'는 50대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나이로 보나 문화로 보나 전형적인 기성세대가 된 것이다. 2030세대의 대척점에 서면서 오나가나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86세대'는 다시금 무대 한복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미 이들은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사회운동 등 모든 영역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잇달아 열린 청문회는 그동안 '86세대'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것은 특권을 추구하고 부의 축적에 집착해 왔다는 점에서 다분히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하는 과정이었다. '86세대'는 더 이상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기득권에 집착하는 입장에서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한 '86세대'가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주로 기댄 것은 '적대적 공생'을 추구하는 진영 논리였다.
한때 진영 대결은 역동적인 역사 발전을 이끌며 상당한 순기능을 했다. 민주 대 독재, 평화 대 냉전, 개혁 대 수구 구도가 바로 그러했다. '86세대'는 이 구도 속에서 민주, 평화, 개혁의 편에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독재, 냉전, 수구 세력에 대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진영 대결의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축적했다.
하지만 박근혜 집단의 주도로 좌우 대결 구도가 작동하면서 진영 논리는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퇴행적 구도로 변질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며 진영 구도는 다소 변화된 양상을 보였지만 소모적 대결을 거듭했다는 점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의료 분야를 둘러싼 갈등은 소모적인 진영 대결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의료산업은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분야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를 외면하는 의료 공공성 유지와 공공성을 포기하는 산업화 추진이라는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진영 논리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86세대'가 한국 사회의 질곡으로 작용하면서 역동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못한 조건을 자식 세대에게 물려준 첫 번째 세대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자칫하면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세대가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저명한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역사적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에서 비롯되었고,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86세대'가 곱씹어 봐야 할 구절이 아닌가 싶다. 찬란했던 과거에 갇혀 실패를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운명의 기로에 서 있는 '86세대'로 불리는 기득권 세력이 쥔 권력과 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세상은 거듭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녕, 86세대]
'386, X,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의 강력한 사회적 상상' http://omn.kr/1jn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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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어쩌다 '꼰대'로 전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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