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작가
박경미
작고 여린 작가의 글에는 거대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마른 손 끝에서 생명력이 가득 담긴 캘리그라피가 탄생한다. 행복을 심고 희망으로 쓰는 캘리그라피 작가, 김선미씨(48)는 지난 2002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충북 청주에서 당진을 찾았다.
김 작가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순성면 봉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마을 주민들이 김 작가에게 먼저 다가왔다. 김 작가는 이웃들과 커피 한 잔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이 됐다.
그들과 SS클럽이란 이름으로 모임을 이어갔고 그 사이 김 작가에게 두 딸이 태어났다. 이후 김 작가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읍내동으로 이사를 갔고, 이곳에서 당시 둘째아이가 다니던 당진초 학부모들과 자녀와 함께 봉사하는 가족봉사단을 꾸렸다.
둘째 아이가 8살 때 시작한 활동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외에도 동화구연 봉사모임인 낮도깨비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일상을 덮친 암의 발견
평화로운 일상에서 위기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평상시처럼 편한 차림으로 누워있던 그는 가슴에 무언가 잡히는 것을 느꼈다. 멍울이 만져졌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던 그는 다음날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유방암이었다. 의사와의 면담 후 남편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했다.
걱정과 불안, 초조함에 시달리던 남편을 다독인 것은 오히려 김 작가였다. 그는 "예상했던 소식을 내 귀로 들으니 오히려 담담해지고 차분해졌다"며 "처음 병을 알게 됐을 때 초조해하던 남편을 '괜찮아, 예상했잖아'하며 달랬다"고 말했다.
세 번의 위기
치료를 결심하고 김 작가는 3달에 한 번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를 만날 때마다 부부는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의사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오면 남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담배를 태우곤 했다. 그래도 2년 동안은 담배보다 안도의 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하지만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병을 앓았던 5년 동안 세번의 위기가 왔다. 처음은 뼈에 암이 전이됐다. 김 작가는 "이젠 정말 죽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치료를 이어간 그에게 시련은 계속 찾아왔다. 좋아지나 싶은 순간, 간과 심장에도 암이 전이됐다.
"암이 전이되면서 약의 강도는 점점 세졌어요. 치료를 하고 약을 처방받으면서 좋아질 거라는 생각보다 '이게 병이 진행되는 과정인가보다' 생각했어요.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