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전거 타는 아이
손연정
나와 달리 겁이 많아 5학년이 되도록 네발 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로 넘어오지 못 하던 아이도 자전거에 푹 빠져 산다. 저녁마다 조르는 아이에게 못 이긴 척 넘어가 함께 한강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쯤 지나니 나도 아이에게도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이라도 착용하지만 나는 그냥 탔었다. 그런데 이 길을 달리는 저 사람들 좀 보소. 이건 뭐 자전거 매장 쇼 윈도우 속 마네킹을 그대로 옮겨 놓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거 이거 자전거만 장만해서는 안 되었던 것인가. 복장을 다 갖춰야 하나. 모든 운동은 장비빨로 시작해서 장비빨로 끝난다더니 과연 맞는 말이었나 보다.
지금은 감옥에 있는 어느 전직 대통령 시절, 한 장관이 고유가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자전거 출퇴근 퍼포먼스를 펼친 그 자전거가 150만 원짜리였단다. 그 1/7정도 되는 자전거를 타며 얼마만큼의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전거보다 배꼽이 더 크게 생겼다.
아이에게는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자전거 의자위에 씌우는 메모리폼 덮개와 가로등과 자전거 앞뒤에 달린 보호등이 훤함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쓰는 라이트를 꼭 필요하다해서 사 줬다. 나는 헬멧도 없이 달리는 건 너무 위험해 보여서(사실 위험할 것도 없는 길이지만 자전거족이라면 헬멧정도는 갖춰야 할 것 같아서) 헬멧을 한 개 샀다.
영화 <북경 자전거>에서 주인공 구웨이는 자전거에 목숨 거는 시골에서 북경으로 갓 상경한 소년이다. 자전거 배달회사에 근무하는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생존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를 위해서라면 남의 머리도 서슴없이 돌멩이로 내려찍을 수 있을 만큼 뭐든지 할 수 있는 소년이었다.
이 영화에서 구웨이와 대척점에 선 인물은 지안이다. 그는 학생으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자전거가 필요하다. 구웨이와 지안은 모든 면에서 대비되는 인물이다. 농촌과 도시, 노동인과 학생, 생활수단인 자전거와 향락수단인 자전거, 그리고 그 자전거를 소유하는 방법 역시 육체노동 대 동생의 학비를 훔친 돈이다.
2001년 개봉한 영화지만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사람의 자전거도 구웨이와 지안에게서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여름 밤 한강 라이딩을 즐기는 나와 아이는 향락의 자전거를 타는 부류로서 얼마나 멋지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동대문시장만 가도 자전거가 생계수단인 사람이 아직 많다.
중남미 순방 중,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사람중심의 자전거 도로 '자전거 하이웨이(Cycle Rapid Transportation CRT)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가급적 기존 차로를 줄이지 않는 혁신적 공간 활용을 통한 자전거 하이웨이를 구축해 자전거도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는 포부다.
서울시가 구축하는 자전거 하이웨이가 엄청난 장비빨에 부끄러워서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자전거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한 달 짜리 자전거 족으로서 소망이다. 구웨이와 지안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자전거 도로, 자전거 장비를 풀 장착하지 않아도 헬멧만으도 무시 받지 않는 자전거 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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