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100
ELUR
- 최종 결과물을 책으로 묶는 이유가 있나?
"책은 특별한 물성이다. 특정 프로젝트의 모든 결과를 담아 완결하는 기능을 맡는다. 요즘 일러스트레이션은 너무 쉽게 소비된다. 페어에 가보면 공들여 그린 작업이 몇 천 원에 물건처럼 팔린다. 우리는 제대로 구현한 '작업'을 소비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과 실크스크린 포스터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작가들이 좋아서 제 작업을 싸게 파는 게 아니다.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최소한의 제작비라도 건져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우리도 아티스트에게 작업비를 지불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추후 페어에서 작업을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일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단, 작업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다. 근데 지금 상황에서 이건 너무 먼 미래라... 일단 텀블벅 펀딩을 성공하는 게 급선무다. 하하"
- '리소그라프' 인쇄와 한정된 색이 만드는 느낌이 묘하더라.
"리소그라프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리소라는 인쇄기 회사에서 만든 프린터다. 리소그라프 인쇄는 핀이 자주 나가서 작업 하나를 인쇄한 후 그 위에 다른 색깔로 인쇄하는 걸 반복하면 의도치 않게 자주 색이 겹친다. 약간 바랜 듯한 질감, 잉크가 묻어나는 느낌도 묘하고 바랜 색깔부터 쨍쨍한 비비드 색깔까지 그 스펙트럼도 유연하다. 기성 출판에 없는 고유의 매력이 있다.
색의 경우 팀 별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고양이 팀은 그 눈에서 따온 노란색을 중심으로 초록색과 검정색을, 강아지 팀은 그 혓바닥에서 따온 분홍색에 하늘색과 검정색을 사용하며 농도 조정이 가능하다. 리소그라프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들에게 익숙한 장비가 아니라 알맞은 작업 방식을 새롭게 구상한다는 점도 중요했다. 규칙을 가지고 노는 에루어의 철학과 맞닿는 부분이다."
- 실크스크린 포스터는 어떤가?
"포스터는 30cm X 40cm, A3 정도 크기로 액자까지 맞춰서 하나의 작품으로 다룬다. SAA와 함께 진행하는데, 이곳은 PaTI 졸업생인 이산하, 정성훈이 운영하는 스튜디오로 PaTI의 실크스크린 장비를 관리하면서 동시에 이를 활용해 독립 스튜디오 활동도 병행한다.
학교에서 쓰는 장비인 만큼 품질도 좋고, 동문 사이라서 1~2장처럼 말도 안 되는 소량 인쇄도 가능해 우리에게는 최고의 파트너다. 특히 SAA는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기 때문에 실크스크린으로 작가의 작업을 정성 들여 제대로 구현하는 걸 굉장히 중시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방향점이 같았다."
- 이번 프로젝트에 PaTI 출신이 많이 참여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의 배움이 도움이 되나?
"PaTI에서는 책을 만들 때 기획, 서체, 사진, 종이, 인쇄 등 책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다각도로 탐구하길 종용했다. 서체가 필요하면 직접 만들기도 하고, 이미지가 필요하면 구글링보다 카메라로 찍고 직접 편집했다. 리소그라프나 실크스크린도 4년 내내 쓴 터라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이 낯설어할 때 주도적으로 규칙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수업 중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일단 시작한 후 연발한 실수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번 <CAT vs DOG>도 겁 없이 덤빌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하."
- 텀블벅에 실크스크린 포스터 수익률을 적나라하게 밝혀서 깜짝 놀랐다.
"실크스크린 포스터 가격이 15만 원인데 인쇄 공정을 모르는 분들이 혹 오해를 할까 봐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진정성에 납득이 가야 펀딩이 성공할 것 같았다. 제작비 항목을 보면 9만 원인데 액자가 비싸다는 문의가 있다. 현실은 정 반대다. 제작비 대부분은 실크스크린 공정에 드는 최소한의 비용이다. 실크스크린 포스터를 1~2장 정교하게 인쇄하려면 정말 가격이 비싸다. 포스터에 액자를 끼우니 배송비도 올라가고, 텀블벅 수수료도 있다. 이런 절대 비용을 빼고 가장 높게 책정한 부분이 아티스트 작업비다. 20%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작업비를 높이면 포스터가 비싸다고 구매를 망설일까 걱정되어 어쩔 수 없었다."
- 아무리 봐도 수익 날 구멍이 없다. 텀블벅 펀딩에 100% 성공하면 완전 적자, 200% 성공해도 실질적인 적자다. 대체 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
"일러스트레이션은 외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소외된 느낌이다. 그래픽 디자인, 사진 분야에서는 신선한 매체가 계속 출현하지만 이쪽은 관련 매체도 빈약하다. 이번 <CAT vs DOG>을 시작으로 에루어가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새로운 플랫폼이 되기를 희망한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실패지만 다른 부분에서 얻은 것도 많다. 100명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외국에 있는 분들도 관심을 보낸다. 펀딩에 성공하면 다음에 어떻게든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근데 사업에 성공하려면 실패 3번은 겪어야 한다던데... 아 괴롭다.(웃음)"
- 손해가 뻔히 보이는 데 두렵진 않나?
"당연히 두렵다. 손해액도 짐작이 가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후원 없이 텀블벅 펀딩과 자비로 막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적자가 나면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지친다.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래서 더더욱 적자를 내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는 균형점을 꼭 찾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에루어라는 일러스트레이션 플랫폼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많은 것을 기획하고 실현할 예정이니 세상이여 기다려달라, 정도? 하하. 근데 일단 편딩부터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 후 할 말을 이어보겠다. 행운을 빌어달라. (웃음)"
<CAT vs DOG> 텀블벅 페이지
https://tumblbug.com/catvsdog
에루어
http://el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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