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일어났다. 당장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 추진이 시급함에도 북한은 다시 실시하지 않을 거라 장담했던 미사일 도발을 지난 25일 감행했다.
사실 이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지난하고 복잡한 큰 흐름에서 보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북한은 외부 세계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표현 수위를 점점 높여가며 위협을 가하는 성명을 내거나 경제 제재에 대해 더 강경하게 대응하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왔다. 이는 겉으론 강경노선을 취하는 것이지만 내막은 '허세'와 위험한 '줄타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북한의 행보와 그에 따른 미국의 대응은 수십 년간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왔고 따라서 예측 가능했다.
그럼에도 비핵화 협상이 수십 년간 좌초되고, 결국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 것은 북미 상호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에 여러 차례 핵합의를 하고도 이것을 저버리곤 했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비핵화의 대가로 북한과 여러 약속을 하고도 북한의 국제 범죄 사건이 불거지거나 미사일 발사 행위가 일어나면 가볍게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곤 했다.
상호 신뢰가 없는 사이에서 복잡한 합의를 하고 이를 문서화해 봐야 어떤 변수가 일어나면 간단히 합의는 없던 것이 되고 만다. 미국 같은 나라는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북한 같은 소국은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많은 이들이 지적해 왔듯 꽤 다른 유형의 인물이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고, 미국이 전통적으로 취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도 따르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듯 트럼프 정부가 끝나기 전에 비핵화 합의를 완료하는 것이 북한에도 유리하다. 어느 나라든 정권이 바뀌면 앞선 정부가 했던 여러 약속들은 파기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미 대선 전까지 이제 15개월이 남았다. 촉박한 시간이다. 미국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재선 성공 가능성이 낮게 점쳐지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지 못하면, 북한은 미국의 새로운 정부와 비핵화 협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새 정부는 북한에 호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일례로 지난 2000년 10월 군인 출신 조명록이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의 특사로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을 연상시킨다. 당시 조명록은 김정일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며 클린턴을 평양에 초청했고, 클린턴 본인도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해 연말 치러진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승리했다. 이렇듯 북한이 과거 미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과 비핵화나 납치 문제 합의를 할 때 정권이 바뀌면서 좋은 흐름과 분위기가 무위로 돌려진 예가 여러 차례 있었다.
아마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하기 전 이것을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에게 주지시켰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우리와 달라서 정권이 4~5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바뀌므로 외교를 할 때 이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기에 북한 입장에서도 무력 대응을 꺼리고, 전형적인 정치인과 다른 행보를 취해온 트럼프 정부와 비핵화 합의를 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북한은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보다 시간을 끌면서 유리한 국면을 기다리는 듯하다. 이렇다 보니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진정성을 회의적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북한 내부의 논리로 볼 때도 비핵화는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민들 수십 만 명을 아사시켜 가면서 핵무기를 완성, 보유하게 됐는데 이를 달성하자마자, 미국과 비핵화를 위한 합의에 나선다는 것은 내부의 논리로도 맞지 않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핵은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 외부의 정권 교체 시도를 저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자 일종의 '보험' 같은 존재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곧 '자멸'을 의미하기에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을 포기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에선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종용하기보단 모범적인 핵 보유국이 될 것을 촉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다소 위험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우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북핵 문제는 북한의 현 정권하에서 해결되긴 난망한 일이며, 북한에 새로운 정권, 이를 테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고 이들이 국제사회를 향해 핵 포기를 선언하고 이를 실행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북한에 새 정권이 세워지려면 새로운 저항 세력이 생성돼야 하는데 현재의 북한 주민과 그 사회의 역량이 이를 실행하고 성공시킬 만한 능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주민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갖춘 나라이기에 주민들이 조직적인 저항을 하고 이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긴 어렵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아랍의 봄' 같은 시민이 주체가 된 혁명을 통해 북한에도 '평양의 봄'이 오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항상 놓지 않아야 한다.
평양의 봄이 오려면 국제사회가 북한에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을 현재처럼 지속해야 하고, 북한 주민들의 '각성'을 위해 외부에서 돕는 것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엘리트 탈북민이 강조하는 것도 이런 것들이다. 북 내부에 저항 세력이 생성되도록 외부 세계가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을 개진하면 불편해 하는 시각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으론, 남한 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북한 정권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그래서 실제로 개선이 된다면(실제로 미력하게나마 개선의 징후가 있다), 북한 정권의 존속과 정당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한국이 유엔(UN)으로부터 국제규범을 따르라고 여러 권고를 받는 것처럼 북한도 그러한 권고를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남한 사회가 진정한 동족으로 생각해야 하는 상대는 특권을 누리는 북한의 지도부가 아니라 바로 2500만 명의 주민들이다. 이들은 조선시대 이래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남한에도 계급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계급 갈등이 있듯 북한에도 이런 모순이 있으며, 공산주의 사회라고 해서 균등, 균질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남한 정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이냐'라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한 의제다. 과거 미국은 베트남과 정식수교를 맺고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면서 '정치범 수용소' 철폐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외부 투자가 절실했던 베트남은 이를 수락했다. 우리 정치권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노력을 해오지 않았다. 향후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다면 대북 투자 이전에 이러한 선례가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
이 글은 북미 양국이 미 정권이 바뀌기 전에 비핵화 협상을 완료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 제시에서 시작해 북한을 둘러싼 여러 논점을 길게 다소 두서없이 다뤘다. 동의할 만한 주장도 있을 것이고, 넘치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의 존속 여부는 핵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민생활 및 인권 향상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변 간부들이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 북한 지도부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미국이 단계적·병행적 해법을 강조하며 기존 '빅딜론'에서 한발짝 물러났듯이, 북한도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로 화답해야 한다. 북한이 과거의 행태를 또다시 반복한다면 많은 이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며 비핵화 의지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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