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자민당본부 개표센터에서 TV 중계를 보면서 참의원선거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회의는 3가지에 집중한다. 바로 '천황, 교육, 국방'이다. 이것이 현 일본의 정치, 그리고 아베 내각 국정 운영의 핵심 키워드이다.
천황제는 '완전무결한 일본의 통치권'을 상징하며, 그 현대적 기원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뿌리로 한다. 서구열강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본격적으로 모방한 '일본식 부국강병의 실현'이 지상 목표였다. 국가 권력의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위해 메이지 천황은 신권을 부여받은 완전 무결한 존재로 추앙되었다.
<주전장>에 등장하는 스키타 미오 자민당 의원은 위안부 강제 징집과 난징 대학살을 철저히 부정한다. 완벽한 거짓말로 믿는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일본은 결코 거짓말을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미오 의원의 주장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국가와 통치자의 무오류성을 신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치즘과 파시즘의 무한 엔진이었음을 기억한다.
일본 사회에서 '역사 교과서'는 금기와 개혁의 또 다른 주전장이었다. 그 시작은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정부 개입'을 처음으로 인정한 1993년 고노 관방장관 담화, 그리고 '종전 5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한 공식 사과'로 인정되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였다. 이 일을 계기로 1997년경부터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 게재되기 시작한다. 놀라운 변화였다. 하지만 같은 해 출범한 일본회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중대한 위기이자 도전이었다. 위안부가 실린 '잘못된 역사 교과서 수정'은 일본회의의 첫 사명인 셈이었다.
그 역사적, 사상적 동력이 '야스쿠니 역사관'임을 <주전장>은 간파한다. 즉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 해방 전쟁이라는 무오류의 역사관이다. 결국 아베 정권의 집요한 정치 공세와 우익단체를 동원한 여론몰이의 결과로 2012년 경에는 일본의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 위안부 내용은 자취를 감춘다. 위안부 역사는 '일본 제국은 항상 옳다'는 야스쿠니 역사관에 따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거짓 역사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국방의 목표는 곧 개헌으로 통한다. 아베 총리가 숙명적인 정치 목표를 개헌으로 천명하는 이유, 그리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개헌 이슈를 전면에 배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2~3위의 경제대국, 그리고 세계 6~7위의 군사비 대국인 일본이 갖지 못한 것이 바로 '정상 군대'이다.
자위대는 교전권이 없다. 평화헌법에 따라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태평양 전쟁을 감행했다는 일본 극우세력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 미국의 이익이 일본 우익의 욕망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면서 군국주의 일본의 야망은 조금씩 싹을 키워왔고, 아베 정권과 일본회의에 의해 '개헌'을 명분으로 본격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평화헌법 개정의 씨앗은 1957년 기시 노부스케 총리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A급 전범이었으나 미일안보동맹의 카드로 면죄부를 받고, 일본 자민당 일당체제의 산파 역할을 자임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군국주의와 개헌의 꿈은 총리 임명 직전 급사했던 아들 아베 신타로, 그리고 외손자인 아베 신조 총리로 피를 타고 전승되었다.
약관의 나이로 메이지유신의 본향이자 우익 정치세력의 심장인 야마구치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의 일성은 '반드시 개헌을 성사시키겠다'는 포부였다. 그의 꿈이 메이지유신과 대동아공영권으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일본의 찬란한 부흥', 즉 '욱일(旭日)' 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위안부 문제는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과의 전쟁

▲'주전장' 미키 데자키, 현재로 이어지는 질문 제시 미키 데자키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주전장>은 우익들의 협박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뛰어든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한미일 3개국을 넘나들며 3년에 걸친 추적 끝에 만든 새로운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25일 개봉.
이정민
영화 <주전장>의 시선은 매우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다. 그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나라인 한국인도 아니고, 진실과 거짓을 혼용하는 전쟁 가해자 일본인도 아닌, 미국 시민으로서의 3자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영상은 소녀상 바로 앞에서 '위안부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국 여행 중에 천진난만하게 웃는 일본 청소년에게 있어서나, 위안부 집회에서 '일본 정부는 진실을 밝히라'고 목청을 높이는 한국 청소년에게 있어서나 적절하고 거리를 유지한다. 시종일관 감독은 냉정하리만큼 차분하게 일본의 우익 인사들에게도 카메라를 고정하고, 깊숙이 그들의 사유체계를 클로즈업 한다.
하지만 그의 카메라도 런닝타임 2시간에 이르러서는 흔들리고 고뇌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미국 의회에서 16살의 기억을 더듬으며 위안부 당시의 피해상을 증언하던 이용수 할머니는 힘주어 말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법'이라고.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의 눈에서는 끝끝내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였을까? 감독은 길게는 3년, 짧게는 2시간 런닝타임 내내 참고 참았던 말을 엔딩에서야 겨우 꺼낸다.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 그분들의 정의가 구현되는 희망을 뜻한다. 또한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하나의 전쟁을 시작하였지만 전선은 세 곳이다. 위안부 문제는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의 현대적 광기의 최전선이다. 그것은 각기 다른 이름의 전장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7월 1일, 일본회의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는 아베 내각의 '경제 보복 조치' 선전포고와 함께 전쟁은 확전되고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일터까지 침투하고 있다.
만약 총성없이 벌어지는 이 야만의 전쟁을 방관하거나 외면한다면 뼈아픈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 양심과 문명의 보루이며, 진실과 정의의 싸움이다. 우리가 미키 데자키의 외로운 싸움에 어깨동무해야 할 이유이자, 일본에서 상영 금지 논란이 일었던 <주전장>의 상영관 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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