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미
나는 백수일 때 한낮의 카페에 앉아 있던 그 기분을 기억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마다 내가 백수임을 알아채는 것 같았다. 취직한 친구가 "뭐 하냐?"라고 물어오면 아무것도 안 하는데 뭐라도 하는 것처럼 바쁜 척하기도 했다.
출퇴근이 없다는 건 나의 무능을 들키는 일 같았다. 일부러 정장 비슷한 옷을 입고 화장을 공들여 하고 외출한 적도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다 직장인인 듯했다.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그때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 나의 아버지는 그것과 닮은 감정인 걸까? 내가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나는 한때 이십 대에 직업이 없었던 거지만 이제 앞으로 오랫동안 생업이 없을 일흔의 아버지는 그때 내가 느낀 부끄러움과는 다른, 좀 더 복잡한 마음일 것이다. 나는 청춘이었고 그것은 잠시였지만, 아버지의 청춘은 지났고 그것은 길어질 수도 있으며, 어쩌면 계속될 수도 있을 테니.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기분일 것이다.
과자 한 봉지도 아버지에겐 죄책감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겐 그냥 먹는 과자가 아니라 일이 없어 집에 있다 먹는 과자였기 때문이다. 딸 방에 놓인 과자 한 봉지를 먹은 것이 자신 삶의 무료함을 드러낸 것 같아 싫고 부끄러웠던 것일까. 아버지가 내민 것은 과자가 아니라 허둥대는 마음 같았다.
그것이 아닌데. 셀 수도 없이 수많은 과자와 밥을 먹여 딸을 키워냈는데. 딸이 없는 딸 방에서 겨우 그깟 한 봉지의 과자를 먹었다고 쩔쩔매며 조급해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는 낯설었고, 그 행간이 읽혀 마음이 찌르르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먹은 과자를 딸에게 다시 먹이려고 똑같은 과자를 급하게 사 와야 했다. 먹어야 자식이고 먹여야 부모인 걸까.
아버지가 마음 놓고 심심해 하셨으면 좋겠다. 죄책감 없는 심심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입이 심심할 때, 삶이 무료할 때, 맛있게 과자 한 봉지를 드시고 더 맛있는 과자를 사러 마음 편히 동네를 거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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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한 봉지 몰래 먹은 아버지가 허둥대며 내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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