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 5동의 할머니가 민 관리사를 배웅하고 있다.
김성욱
익명을 요청한 상계 5동의 할머니(76)는 허리 통증으로 며칠째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민 관리사는 이를 알고 있었다. 할머니 집에 설치돼 있는 IOT(사물인터넷) 장치를 통해 할머니의 신체 움직임, 실내 온도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IOT가 축적한 정보는 민 관리사 핸드폰으로 실시간 확인된다고 했다.
"불면증은 우울감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이런 분들은 더 신경을 써야 해요". 할머니가 잠시 나간 사이 민 관리사가 귀띔했다. 노원 센터는 집중 관리 어르신 375명의 집에 이 같은 IOT 장치를 설치했다고 했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민 관리사 전화기가 연거푸 울렸다. "아 어머니, 왜요? 전화기가 고장 났어? 그럼 일 끝나고 갈게요", 업무 마감 시간인 6시가 다가왔지만 민 관리사는 예정에 없던 두 집을 더 방문하게 됐다고 했다. 민 관리사는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날 오후 처음 화장실에 갔다.
[7] 오후 5시 55분 ~ 6시 20분
상계 10동의 한 주택, 민 관리사를 급히 호출한 박(77, 여)씨 할머니는 집전화가 고장 났다고 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미안해."
민 관리사는 곧장 전화기 상태를 확인하고 통신사에 전화를 했다. "노란 선은 잘 꽂혀 있는데요... 검은색 기기요? 거긴 불이 안 들어와요. 네, 네." 안경을 벗고 이리저리 전화선을 살피는 민 관리사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머니, 이거 기사님이 오셔야 된대. 토요일 한 시 괜찮아요? 오케이. 그럼 그때 기사님 오시라고 할게요." 민 관리사는 할머니가 준 냉커피를 단번에 들이키고 곧장 다음 장소로 향했다.
[8] 오후 6시 30분 ~ 7시 20분
마지막 여덟 번째 집이 상계 10동의 한 반지하, 문(82, 여)씨 할머니네였다. 할머니가 민 관리사를 찾은 이유는 영문 모를 우편 때문이었다. 앞서 이씨 할아버지네서 봤던 것과 똑같은 공공일자리 근로장려금 신청서였다.
"다 여기 민경자 덕분이야. 아 참, 경자, 옷장 솜이불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했었잖아. 냄새가 너무 심해지더라고. 근데 저 옆집에서 이사를 하길래 이삿짐 아저씨들한테 부탁을 했더니, 다행히 이불을 다 버려줬지 뭐야. 아주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더라고. 또 며칠 전엔 말이야..."
할머니의 근황 얘기가 다 끝나고 민 관리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문 할머니는 퇴근하는 민 관리사를 꼭 껴안았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생활관리사의 노동시간은 휴식 30분을 포함해 오후 12시 30분부터 6시까지지만 이날 민 관리사의 일과가 끝난 건 저녁 7시 20분쯤이었다. 후원 물품으로 가득 찼던 민 관리사의 자전거 앞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다. 가벼워진 노란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민 관리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 매일 이렇게 일하면 힘들지 않나.
"힘들긴요, 그냥 얘기를 들어드리면 돼요. 어르신들 코드에 맞춰서. 다들 얘기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어르신들한테 배우죠. 우리도 다 저렇게 늙어갈 거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어르신들 말씀 자르고 나와야 할 때가 가장 어려워요. 일하면서 자기 것 찾으려고 하면 이 일 못해요. 전 이 일이 맞나 봐요. 일을 하면 신이 나니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