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남소연
"조국 임명에 반대해 온 서울대와 고려대가 실시하고 있는 촛불집회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다른 대학가에도 퍼질 수 있도록 저희 연세인이 앞장서서 불을 붙였으면 한다."
고려대, 서울대, 부산대에 이어 이번엔 연세대란다. 지난 11일 '제1차 조국 사퇴 요구 시위'를 천명하고 나선 건 한 연세대 졸업생이었다. 이날 자신을 연세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A씨는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16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백양로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 반대 집회를 연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날 오전 '단독'이란 꾸미말을 붙여 한 경제지가 이를 즉각 보도했고, 삽시간에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으로 게시글이 공유됐다. A씨는 "총학생회가 조 장관 인사청문회 이전 집회를 열지 회의를 했으나 명분이 충분하지 않아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라며 "지금은 장관 임명이 됐기 때문에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라고 밝혔다.
재빠르게 이날만 수십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이 '서울대, 고려대에 이어 연세대까지, SKY 학생들 모두가 조국 장관 반대에 나섰다'는 데 주목했다. 그리고 이날, 조국 장관은 '청년 전태일' 소속 청년 11명을 만났다(관련 기사 :
조국 만난 '흙수저' 청년들 "기대할 테니 행동으로 보여달라").
현충원 참배를 제외한 사실상 첫 외부 공식일정이었다. 앞서 조 장관이 한 약속도 지킨 셈이 됐다. 법무부는 이날 '법무부TV' 유튜브 채널과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비공개로 진행된 '2030 청년들 만남' 영상의 일부를 공개했다. 사실 그 짧은 영상을 통해나마 보고 싶었던 것은 조 장관의 '태도'와 '매너'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조 장관은 또 다른 약속을 했다. 약속의 내용은 이랬다.
끝나지 않은 분노, 조 장관의 약속
"제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대 학생이든 어느 대학 학생이든 간에 그 학생들의 비판의 내용을 듣고요. 그 내용에 대해서 답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서로 소통을 하려면 소통을 하겠습니다. 저의 본의가 전달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를 하겠습니다."
앞서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조 장관은 서울대 학생들의 '반대 집회'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만남이 먼저 성사된 것은 후배이자 제자가 아닌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이었다. "인사청문회 준비과정에서 (만남을) 요청받았다는 걸 듣고 당시에 바로 응하고 싶었다"라던 조 장관은 모두 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 한 번만으로도 해소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약속은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오늘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자리는 아니고 여러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제가 듣고, 법무부 차원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제가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한테 하고 싶은 얘기 다 해주시면 됩니다."
앞서 고려대 학생들이 2차 집회를 예고한 직후였던 지난 8월 29일, '청년전태일'은 기자회견 열고 당시 후보자였던 조 장관에게 공개대담을 요구했다. 이어 '조국 후보에게 이질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2030청년들과 조국 후보와의 공개 간담회'를 열었지만 조 후보자는 일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흙수저 청년 세대들이 저한테 면담 요청을 해서 봉투가 하나 왔습니다"라며 이들의 면담 요청을 소개했던 조 장관. 임명 직후인 지난 10일 대담을 역제안했다는 조 장관은 이날 오전 특성화고 졸업생, 청년 건설노동자, 코레일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무기계약직 물리치료사, 취업준비생, 특성화고권리연합회 회장 등을 직접 마주했다.
"저나 제 가족이 우리나라에서 혜택 받은 층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자라왔다는 점 제가 인정하고 있고, 그 점에서 합법이나 불법이니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에게 실망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은 겸허히 인정합니다. 특히 청년 여러분들이 느꼈던 실망감이나 분노 이런 것들을 어느만큼 제가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청년전태일이란 단체의 성격이 어떠하든) 이건 진짜라고 느꼈다. '조국 논란'의 와중에 가장 뼈아픈 목소리가 바로 이 '청년전태일'의 비판과 박탈감 호소였다. 평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이들의 '조국 비판'이야말로 교육과 입시를 필두로 불붙은 계급론과 불공정·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층의 분노를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한다고 봤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의혹 보도가 쏟아지던 지난 8월 말, 지상파 3사 및 종편 4사 메인뉴스 중 청년전태일의 '조국 비판'을 개별꼭지로 보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실제로 그랬다. 지난 8월 31일 JTBC<뉴스룸>만이 <한국당, "조국 사퇴" 3차 장외집회... 청와대 향해 행진> 꼭지에서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의 인터뷰를 짤막하게 다뤘을 뿐이다.
서울대와 고려대의 집회의 경우, 대다수 방송사 메인뉴스들이 생중계로 연결하며 '청년층의 분노'를 전달했던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보도 행태다. 방송 뉴스에서조차 외면 받는 '흙수저들의 분노'는 '청년층의 분노' 중에서조차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셈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조 장관이 과연 청년전태일과 실제로 만날지, 또 만난다면 언제쯤 만남이 성사될지, 또 그들과 만나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말이다. 이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 보자.
또다시 소외된 목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