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저자 오찬호의 문제의식은 2008년 당시 20대가 예전과 달리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당시 그는 학생들과 KTX 비정규직 승무원 사태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이었는데, 학생들은 정규직을 요구하는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에게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를 외쳤다고 한다.
저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20대가 결코 소수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만난 20대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불평등을 내면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20대의 인식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필독서로 자리 잡은 자기계발서 열풍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음을 주목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이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20대 학생들은 이와 같은 구조에 수긍하고,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즉, 사회는 원래 힘든 곳이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생은 모두 자신의 탓이다. 그러다 보니 20대는 항상 스스로를 다그칠 수밖에 없고, 그러지 않은 타인에 대해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다. 구조 속에서만 사고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에 열심이지 않은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 자기계발로 둔갑한 취업준비 과정이 아무리 희생과 상처를 요구하더라도, 이것이 누군가에 비해 시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를 기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60p
노력이 더 많은 쪽이, 즉 남들보다 시간 관리를 더 잘 해온 사람이 사회적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을 더 가치 있게 효율적으로 잘 사용한 능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직급의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차별의 근거가 정당하므로, 해고당하거나 비정규직이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차별도 당연한 것이다. – 76p
저자는 이런 20대의 인식 때문에 그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편견을 확대재생산하며, 사회가 제시하는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자기계발의 논리로 바라보다 보면 그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인 이상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고정관념에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학력위계질서에 민감한 20대
현재 20대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는 학력위계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학벌을 따지고 대학서열에 민감하다. 대학서열을 자기계발의 결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수능점수는 다른 이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지금의 이십대들이 수행하는 '학력의 위계화된 질서'에 관한 집착은 과거의 학력주의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고 자기 내면화의 강도도 훨씬 높다. 이들에게 학력에 근거한 비교와 차별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이를 의문시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 108p
다른 이보다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들은 서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개인의 '신분 상승'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노력의 결과가 평가절하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 149p
따라서 이번 사태에서 조국 후보자의 딸이 부정입학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들이 특히 분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과하게 정의롭거나, 기득권의 특혜에 민감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노력의 결과가 오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들도 역시 조국 후보자의 딸과 같은 입시유형으로 '명문대 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을 획득했으며, 누구보다 많은 장학금을 받고 다니지 않는가.
언론들은 마치 그들이 20대 전체를 대표하듯 보도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그들은 20대 중 그 누구보다도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다. 경북대 학생들의 외침이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자독식문화를 극복하자
저자는 이와 같은 20대의 자화상이 결국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문화에서 비롯한 것임을 지적한다. IMF를 거치면서 사회는 각박해졌고, 정부는 더 이상 개인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기존의 공동체는 깨어졌으며, 개인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자기계발 열풍은 20대에게 절박함의 표현이요 생존의 방법이다. 그리고 자기계발의 신화는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의 이십대들은 유년시절부터 이미 남들을 밀어내고 안도감을 얻는 방식에 익숙해져 왔다. '왕따'라는 집단 문화도 "자기가 낙오자가 될까봐 불안한 나머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는 개인들이 누군가를 멸시하는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자신은 그 멸시받는 대열에 들지 않기 위한 안도의 행위였다. – 17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