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유튜브 방송 '이승만TV'에 출연한 모습
이승만TV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는 도발적인 '물건'이다. 반일감정을 '반일 민족주의'도 아니고 '반일 종족주의'로 폄하하면서, 원시적이고 저급한 감정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 책 '에필로그: 반일 종족주의의 업보' 편에서 그는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망국의 길로 이끌어 갈지 모릅니다"라고 경고했다. 지금처럼 일본을 대했다가는 또 한 번 망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일 갈등이 격화되는 속에서 총구를 한국 쪽으로 겨냥하면서 '그만하고 닥쳐!'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셈이다.
위기감
<반일 종족주의>는 그렇게 도발적이면서도, 동시에 엉성하다. 일제 식민지배가 한민족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누누이 강조하다가, 갑자기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 전체 재산의 85%가 일본인 소유였다'고 말해버린다. 식민지배가 결국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음을 시인해버린 것이다. 일본이 두고 간 재산이 그 정도로 많으니, 한국이 식민지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게 아니라, 실상은 일본이 받아갈 게 더 많았었노라고 주장하려다 보니 그런 실수도 범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적 충돌이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여섯 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학술적 정합성보다는 다른 것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라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적 목적'을 말한다. 책의 궁극적 의도가 정치적 목적에 있다 보니,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 저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에필로그에서도 나타난다. 이 부분의 필자인 이영훈 교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망국의 예감'을 거론하면서 정치권과 학계의 결단을 간접적으로 촉구한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망국의 길로 이끌어갈지 모릅니다. 109년 전 나라를 한번 망쳐본 민족입니다. 그 민족이 아직도 그 나라가 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한번 더 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절반의 국민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망국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그 근원을 이루는 반일 종족주의의 횡포에 대해 이 나라의 정치와 지성이 너무나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이영훈 교수가 말한 '반일 종족주의를 가진 집단'이 누구인지는 그의 말에서 쉽게 드러난다.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현재 정권을 잡고 있다'는 점과 '유권자 50%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친절하게 명시했다.
반일 종족주의 세력의 횡포에 대해 "정치와 지성이 너무나 무기력"하다고 그는 한탄했다. 정치권과 학계가 무기력에서 벗어나 무언가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반일 종족주의>를 내놓게 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다 보니, 학문적 정합성은 아무래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 논리적 모순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흔히 학자들은 정치권과 학계를 열거할 때 학계를 먼저 언급한다. 이영훈 교수는 '정치와 지성'이라면서 정치권을 먼저 언급했다. 그가 정치적 해법의 필요성을 얼마나 절실히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영훈 교수의 목적은 일본을 변호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그가 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다른 것도 곤란에 처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가 위 인용문에서 드러난다. 반일 종족주의 외에, 그가 위험시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에서 그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