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을 통해 공개된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3부작 기획 기사
시사IN
몇 개의 문답으로 조사 대상의 성격을 단순히 뭉뚱그리지 않기 위해 세밀하게 질문을 준비하다 보니 208개의 문항이 짜였다. 설문 결과를 통해 저자들은 '20대 남성'들만의 특별한 정체성이 발견됐다고 지적한다. 바로 20대 남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약자라고 여기며, 차별을 겪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성 차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자는 30.5%다. 30세 이상 남자로 가면 이 응답은 8.2%에 그친다. 22.3%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 숫자는 보기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 드러나는 거의 모든 문항에서 20대 남자의 응답은 30세 이상의 남자의 응답과 2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 - 60쪽
설문 결과를 조목조목 살펴 보면, 자신들이 차별 받는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의 비율이 다른 나이대의 남성보다 유독 높다. 이들이 소수자 정체성을 갖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권력 개입'에 대한 강한 혐오
책에 따르면, 설문 중 '젠더'와 '권력'이란 키워드가 결합되는 질문에 20대 남성은 유독 자신들이 약자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응한다. 다른 나이대의 남성과 비교해도 두드러질 정도인데, 20대 남성 중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문항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비율이 25.9%였다. 다른 나이대의 남성과 달리 20대 남성 사이에서는 이 비율이 공고하게 유지됐다.
'반 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이라고 저자가 이름 붙인 이들은 법과 연애 시장 등의 분야에서 자신이 소외당하고 피해를 입는 대상이라고 여긴다. 그 때문에 '여성 고위직 비율 확대 정책' 등에 관해 '매우 동의-약간 동의-중립-약간 반대-매우 반대'와 같은 식으로 답하는 문항에서 강하게 반대의 뜻을 드러낸다. 심지어 이들은 젠더 이슈에서 반감이 심해도 너무 심해서 '남녀의 소득이 비슷한 사회가 공정하다'는 당위적 문항에도 58.3%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할 정도다. 남성이 약자이니 더 우대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세대론은 반페미니즘 정체성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변수다. 20대 남자들은 부모 세대에서 여성 차별이 심각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조차도 79.2%가 이에 동의한다. 기성세대 남자는 권리를 누렸다. 하지만 20대는 이중으로 권리를 박탈당한다고 이들은 느낀다. 남자의 기득권과 고도성장 세대의 기득권이 동시에 사라진다." - 127쪽
책에 따르면, 정부 기관과 같은 권력이 개입해 난민 등 소수자를 돕는 정책에는 남녀 가릴 것 없이 20대 다수가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또한 페미니즘에 반감을 드러내는 건 30대 남성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비율이 20대 남성처럼 높지는 않았다. 때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세대와 성별로 나뉜 어느 집단과도 다른 의견이 20대 남성에서만 엿보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20대 남자>가 담은 조사 결과는 그저 세대론으로 단순화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남자들만의 특징이라고 하기엔 특정 나이대에서만 유난히 극단적인 답변이 나온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사안에서 '비뚤어진 공정성' 잣대가 나오는데, 이게 '20대 남성 현상'의 핵심이다.
'맥락이 제거된 공정'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