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해전도한산도에서 보게 된 한산대첩도
지요하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는 왜군만이 적이 아니었다. 매우 무능하고 용렬했던 군주 선조가 어느 모로는 가장 큰 적이었다. 선조의 왕답지 못한 질투와 시기, 감시와 핍박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었다.
조정의 지원이 전혀 없는 가운데 스스로 전함들과 무기들을 만들고 군량미를 확보해가며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것 등 그 모든 것이 악조건과의 싸움이었다. 암군(暗君) 선조의 패악에 가까운 이순신에 대한 폭거는 조선을 멸망케 할 뻔했다. 만약 삼도수군통제사 직에서 파직되고 추포된 이순신 장군이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면, 조선은 곧바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원균의 칠천량 대패로 조선 수군이 거의 전멸한 상황에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이, 수군 재건에 주력하면서 13척의 전선으로 왜선 337척과 싸워 이긴 진도 명량해전은 곧바로 조선을 멸망 위기에서 구해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이미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에 바닷길을 내주어 곧바로 패망을 맞이했을 터였다.
세계의 역사학자들과 군사학 전문가들은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탄복하면서 세계 최고의 명장으로 꼽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는 이순신 장군과 17세기 최강의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넬슨 제독을 비교하면서, 넬슨 제독은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고 오히려 왕의 핍박이 자심한 상황에서 23전 23승을 이뤄냈기에, 이순신 장군과 넬슨 제독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고도 한다.
또 1904년 러시아 함대를 격파함으로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도 자신은 이순신 장군의 발밑에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면 암군 선조의 모습이 겹쳐 떠올라서 괜히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선조에 대한 분통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없이 가엾어지는 마음을 안고 한산도 앞의 밀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임진왜란 때도 당파의 이익에 몰두했던 벼슬아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