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속 윤동주와 후카다 쿠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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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에서는 윤동주의 연인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이여진과 릿쿄대학에서 만나 후카다 쿠미, 두 여성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여진과 후타다 쿠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윤동주의 연애사에는 두 여성이 존재했다고 한다.
북간도 고향에서 윤동주는 여자를 사귄 적이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마음 준 여성이 생긴 것은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 짝사랑의 애틋함이 담긴 시를 적었다. 그리고 그 시 속의 주인공은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1941년)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順(순)아 너는 내 殿(전)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殿(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 윤동주 <사랑의 殿堂(전당)>, 1938.6.19이라 적혀있으나 두 줄로 그어 있음.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츰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窓(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地圖) 위에 덮인다.
- 윤동주 <눈이오는 地圖(지도)>, 1941.3.12-
순, 순이는 누구인가? 이 여인이 등장하는 시들은 모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한다. 송우혜의 저서 <윤동주의 평전>(2014, 시정시학)에 적힌 후배 정병욱의 증언에 의하면, 윤동주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이화여전(현재, 이화여대)에 다니는 여학생으로 학년은 윤동주와 같았다.
그러나 윤동주와 순이는 교회 바이블 클래스에서 서로 눈길만 오갔을 뿐, 단 둘이 밖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사랑의 殿堂(전당)>에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4년 가까이 짝사랑만 한 윤동주의 애달픔이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다.
짝사랑으로만 끝이 난 순이와는 달리, 릿쿄대학에서 만난 여인은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 관계가 진전된 여성이었다. 송우혜의 저서 <윤동주의 평전>(2014, 시정시학)에 의하면, 그 여인은 함북 온성에 있는 박 목사의 막내딸로 도쿄에서 막내 오빠와 함께 오누이가 자취하면서 성악을 전공하는 중이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박춘혜였다. 박춘혜의 집안은 오빠가 여럿인데 모두 공부를 많이 한 엘리트 집안이기도 했다. 박춘혜의 오빠는 윤동주의 친구로, 윤동주가 김치를 먹고 싶으면 그 집에 가서 식사했다.
윤동주는 7월 하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북간도 고향이 잠시 갔을 때, 박춘혜의 사진을 들고 가서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윤동주는 가족들에게 박춘혜를 "성격도 좋고 사람도 아주 좋은 여자"라고 소개했으며, 집안 어른들도 "가문 좋고, 참 좋다. 잘 추진해봐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간 윤동주는 뜻밖에 내용의 편지를 누이동생 윤혜원씨에게 보낸다. '그 여자가 이번 여름방학에 집에 갔다가 약혼을 하고 왔더라'라는 내용이었다. 박춘혜의 남편은 법과를 전공한 사람으로 결혼한 뒤 법관이 되어 청진재판소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 외, 릿쿄대 속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윤동주의 분노와 설렘과 허탈함. 그 모든 것이 가득 묻어나는 릿쿄대학. 나는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릿쿄대학 이케부쿠로 캠퍼스를 찾았다. 릿쿄대학의 빨간 벽돌 건물은 윤동주가 사용했던 건물들이다. 본관 건물, 채플, 그리고 제1식당까지.
제1식당에서 점심시간마다 프랑스어로 스피치를 하던 한국인 유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윤동주가 그 모습을 보고 반하여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일화도 있다. 방학 기간에 학교를 찾아서 인지, 학교가 한산했다. 나는 제1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윤동주의 자취를 더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