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월당 현판 우암 송시열이 썼다.'비 갠 날의 달과 같다'는 뜻이 담겨있다
임영열
정자의 이름, 제월당과 광풍각은 남송시대 시인 황정견이 성리학의 아버지 주돈이를 '흉회쇄락 여광풍제월(胸懷灑落 如光風霽月 : 마음이 맑고 깨끗하기가 밝은 바람과 비 갠 날의 달과 같다)'라고 평한 데서 유래했다.
가을빛이 완연한 제월당에 들어서면 16세기 호남을 대표하는 시인 묵객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가사문학의 시조,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석천 임억령, 백호 임제, 송강 정철 등의 작품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하서 김인후를 빼놓고는 소쇄원의 풍경을 논할 수 없다.
호남 유학의 태두, 하서 김인후와 양산보의 관계는 특별했다. 조경에 일가견이 있던 김인후와 양산보는 일찍부터 교유했고, 김인후는 소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쇄원 48영>이라는 시로 남겼다. 나중에는 자식들을 서로 나누어 갖는 사돈이 되었다. 김인후의 딸과 양산보의 둘째 아들 양자징을 부부의 연으로 맺어 주었다.
제월당의 협문을 통해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밝은 바람의 집' 광풍각으로 연결된다. 사철 머리맡에서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광풍각은 독서와 사색 공간이자 손님들을 접대하는 교유의 공간이다.
옆에 있는 넓은 암반에는 나무와 화초를 심은 석가산(石假山)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제봉 고경명은 무등산 유람기 '유서석록'에서 광풍각을 '물 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라고 했다. 원림의 중심인 광풍각 아래 계곡 사이를 대나무 다리가 아스라이 떠받치고 있다.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양산보는 소쇄원을 절대로 남에게 팔지도 말고 하나라도 훼손하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겼으나, 아쉽게도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호남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일본과의 전쟁, 정유재란의 참화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때 소쇄원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소쇄원의 2대 주인 양자징의 아들과 딸은 왜군들에게 학살 당했다.
소쇄원을 파괴했던 일본의 오사카에서 열린 1992년 세계정원박람회에서 소쇄원은 대상을 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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