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댓글 분석댓글의 76%는 20~30대 남성이 작성했고 그 내용은 '여자도 군대가라'와 '여자가 호신술을 배워봤자 소용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효정
아마 지금도 댓글 창으로 스크롤을 내려 "그래봤자 여자는 남자 힘을 못 이긴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남성 분이 계시겠죠. 하지만 잠시 그 손가락을 멈추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보다 체격이 큰 사람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면, 아무리 여러분이 남성이라도 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상황에서 당신이 그냥 포기하고 죽기로 마음 먹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살아남길 원한다면 단 1%의 가능성에라도 승부를 걸어야겠죠. 그 가능성이 바로 호신술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보다 체격이 큰 상대나 무기를 지닌 상대와 맞서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죠. 상대와 싸워 이기자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벗어나 도망치기 위한 기술이기도 하고요.
심지어 우리 사회의 여성은 남성인 당신보다 9배나 높은 범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여성들 앞에서 '여자는 남자 못 이겨' 라며 이죽거리는 말이나 하고 싶으신가요?
자. 이제 그 못난 손가락을 거두어 주세요. 호신술을 배우는 여성들은 당신을 공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에게 맞서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범죄자가 아닌 이상, 이 기사에 흥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답니다.
이 도시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선
여성 여러분께.
여성이 뭐만 한다고 하면 비아냥거리는 남성들을 의식하느라 서론이 길었던 것을 사과드려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호신술에 대해 알아볼까요?
일단 저는 무술 고수도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평균 이하의 체력을 지닌 몸치이기까지 하죠. 하지만 그동안 여행작가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익혔고, 작년부터는 크라브마가를 배우며 체력을 단련하고, 호신술을 익혀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의 입장에서 저 같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호신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호신술은 일반스포츠와는 다른 생활 스포츠입니다.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거나,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위협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함이 목적이죠.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호신술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주고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거나, 단호하게 의사표현을 하거나 혹은 어르고 달래서 설득이 가능한 경우라면 충돌없이 해결되는 방향을 먼저 모색해야 합니다.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면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죠. 호신술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는 이 모든 것이 통용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우선 도망을 간다고 생각해 볼까요? 도망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나보다 체격이 큰 상대가 출구를 가로막고 있거나, 내 팔을 잡고 있거나, 나를 끌어안고 있거나, 몸으로 나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상대에게서 벗어나 도망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기술(호신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기술들은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멋진 동작이 아니라 진짜 생존만을 위한 기술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물고, 잡아 뜯고, 찌르고, 차고, 소리 지를 것입니다. 사실 조금 추해지는 건 각오해야 해요.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그깟 추한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지금부터 우리는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기로 해요.
일단, 위협상황에서 상대에게 벗어나기 위해선 빠른 판단이 중요하죠.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포 영화를 보면서 '왜 빨리 안 도망가?'라고 발을 동동 굴러본 적이 있죠? 사실 안 도망가는 게 아니라 못 도망가는 겁니다. 우리의 두뇌가 공포 앞에서 '일단 멈춤'을 선택해 버리는 경우죠. 이렇게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라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가 긴장성 부동화에 빠지지 않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지식과 훈련입니다. "지금 누가 저 화장실 문을 막아서고 칼을 휘두르면 어떻게 도망가지?", "지금 저 사람이 갑자기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대처하지?" 등등 문제 상황을 생각하고, 그럴 때 자신이 어떻게 대처할지를 머리와 몸으로 시뮬레이션 해보는 거죠. 그렇게 훈련을 거듭해야 문제 상황에서 얼어붙지 않을 수 있어요. 늘 기억하세요.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