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노동안전조례' 빨리 통과시켜라

[노동안전보건조례 제정하자⑥] 산재로 가족 곁 떠나는 노동자들

등록 2019.11.26 20:46수정 2019.11.2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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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의회(자료사진)
서울시의회(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서울특별시 산업재해 예방 및 노동안전보건 지원 조례안'이 서울시의회에 상정됐다. 이 조례안은 서울 시민과 노동자, 서울시청과 그 산하 기관 등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지원 방안 등을 담고 있다.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서울시의 첫 조례안이므로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시민과 노동자에 대한 책무로 노동안전보건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글에서는 조례안의 주요 내용과 한계들을 살펴봄으로써, 조례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 그 제정 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 등을 함께 정리해보도록 한다.

조례안의 주요 내용과 의의

첫째, 서울시 노동안전보건 정책의 기초가 되는 노동안전보건 기본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에는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들에 대한 정기적인 실태 조사와 지원 사업, 작업중지권 등 분야별 노동안전보건 대책 마련, 사업장에 대한 교육‧컨설팅‧시정조치, 산재 예방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과 운영 방안 등이 포함된다. 조례안이 통과되면, 서울시는 기본계획에 기초해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그 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둘째, 서울시가 사업장의 인‧허가 등 행정처분을 할 때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시민 의견이 반영되는 통로가 마련된다. 서울시가 사업장의 인‧허가 등 행정 처분을 할 때, 지역 주민이 유해물질, 소음, 먼지, 오폐수, 교통사고, 부실시공 등 노동안전보건과 직접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면, 서울시는 그 예방과 피해 대책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운영토록 할 수 있다. 조례안이 통과되면, 시민들은 산재 발생 위험 사업장 인‧허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협의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셋째, 명확한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사고조사위원회가 구성될 수 있다. 서울시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시민의 요구나 시장의 판단으로 노동자,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서울시는 조사 결과에 따라 권고안 이행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하고, 조사 보고서(권고안 포함) 및 이행 과정을 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조례안이 통과되면, 사고의 원인이 보다 정확하게 규명되고 실질적인 개선안이 마련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또 사고 조사 결과가 공론화, 사회화되면서 동일 재해 발생 가능성도 크게 낮아질 것이다.


넷째, 서울형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노동안전보건 자문위원회 등 협치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 서울시는 노동자, 노동조합, 산재예방 전문단체에 소속된 자 중에서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을 추천받아 위촉할 수 있다.

또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심의·자문하기 위해 노동안전보건 자문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조례안이 통과되면,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제도가 실질적인 제도로 작동하고, 시민‧공무원‧노동자‧사용자 등이 함께 협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협치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


조례안의 한계와 그 제정 과정에서 보완되어야할 점

첫 시작이므로 한계와 보완 지점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첫 시작이므로 그 제정 과정에서 한계와 문제점을 충실히 검토하여 보완해야 한다. 서울시 등 지자체가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고민할 때는"정책과 예산의 중복"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즉 지자체는 가급적 중앙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정책과 예산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 중복을 피하지 못하면 인력과 예산의 낭비는 물론 중복 행정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번 조례안 제정 과정에서 보완되어야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서울시가 시청, 투자출연기관, 시 발주 공사 등에 있어 실질적 사용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이 조례안에 포함돼야 한다. 이번 조례안에서 서울시가 감독자가 아닌 실질적 책임을 지는 사용자임을 확인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정책 집행은 그 관성이 매우 강하다. 이번 조례안이 통과돼도 그 실행 방안이 명확하지 않으면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이번 조례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서울시 발주 공사에서 건설업체‧노동자 대표‧서울시로 구성된 노사정 협의체를 구축‧운영하는 방안, 투자출연기관에 대한 노동안전보건 교육과 컨설팅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민간위탁기관 선정 과정에서 노동안전보건 관리 능력을 평가하고 계약서에 의무사항을 명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

둘째,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고용노동부가 보호하지 못하는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이 조례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특수고용노동자, 배달 노동자 등에 대한 보호 규정이 마련되었으나 그 내용과 수준은 매우 미흡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방치와 무관심은 이미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다.

결국, 이들이 바로 서울시가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다. 서울시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대리운전기사 쉼터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 휴게 시설을 확충하는 방안, 서울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유해위험업종을 중심으로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교육 및 컨설팅을 지원하는 방안,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교육 및 상담을 위한 지원 센터를 설립‧운영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조례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다

이번 조례안이 서울 시민,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례안 통과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 조례안의 통과를 늦춰야할 이유가 없다.

2018년 한 해 동안 무려 2,142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지금도 또 다른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가고 있다. 조례안의 통과가 빨라질수록 산재로 가족의 곁을 떠나는 노동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조례안의 통과가 늦어질수록 이들을 살릴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서울시 의원들에게 조례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유성규 기자는 공인노무사로 서울시 안전자문단 위원입니다.
#노동안전보건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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