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극을 그린 영화 <아르고>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럼에도 이란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는 암 투병을 하던 팔레비 국왕의 치료를 명목으로 입국을 허가했으나, 심각한 실수가 됐다. 그해 11월 수백 명의 이란 강경파 대학생들이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며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난입해 외교관과 직원 등 52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질들은 무려 444일이나 억류됐다. 당시 시위대는 인질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잠을 잘 때도 인질들끼리 다리를 끈으로 묶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은 단교했다. 당시 미국은 인질 구출 작전을 시도했다가 처참히 실패하고 특수대원 8명의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81년 1월 미국이 팔레비 왕조의 미국 내 자산을 이란에 반환하는 조건으로 인질 전원이 풀려났다. 이렇게 막을 내린 인질극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며 이란을 혐오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일부 인질의 극적인 탈출기를 할리우드 스타 벤 에플렉이 영화 <아르고>로 만들어 2013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CNN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이 사건으로 시작돼 40년간 계속되고 있다"라며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살은 과거부터 이어진 여러 충돌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인질극에 가담했던 이란 대학생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훗날 정치가가 돼 2005년 이란 대통령에 당선해 강력한 반미 정책을 펼쳤다. 또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란을 '악의 축'으로 부르며 악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불신의 증폭은 양국 지도자들이 서로에 대한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이란이 핵 개발에 나서면서 관계는 더욱 더 냉각됐다. 2009년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가 변화를 모색하고 나섰다.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에 지친 이란도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2013년 양국 정상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본격적인 핵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7월 이란 핵 개발 동결을 내세운 '이란 핵 협정'(JCPOA)이 타결되면서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일부 해제했고, 화해 분위기가 급물살을 탔다.
어렵게 만든 화해 분위기... 트럼프가 '와르르'
하지만 2016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한 이란 핵협정이 불공정한 조건이라며 파기를 선언했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전면 복원했다. 그러자 이란도 핵 개발을 다시 추진하겠다며 반발했다.
영국 더럼대학의 아누쉬 에티샤미 국제관계학 교수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파기를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첫째로 트럼프 행정부 내에 이란에 대해 근본적인 적대심을 가진 인물이 많고,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도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성과로 여겨지는 이란 핵협정을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표되는 이란에 적대적인 중동 내 미국 동맹국들의 압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생명줄로 여겨지는 석유 수출을 봉쇄하고, 이란의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유조선 피격과 사우디 원유시설 공격, 이라크 내 미군 사망 사건 등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사살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정국을 돌파하고, 오는 11월 치러질 대선을 위해 일부러 이란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CNN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엘리트 부대를 20년 이상 이끌어온 인물"이라며 "그는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평생을 보냈고, 많은 미국인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것은 틀림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정부는 그의 존재감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사살을 명령한 이유"라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이 이란의 전략적 야망을 멈출 수는 없더라도 느리게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공은 이란에 넘어갔다. 최고지도자와 대통령이 직접 '가혹한 보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면전에 나설 경우 정권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는 데다가 이슬람 혁명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는 실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위대한 장군'을 잃은 국민들의 분노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이란 지도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