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옥주, 버마전선 방패사단의 위안부였던 나(文玉珠―ビルマ?線楯師?の慰安婦だった私)>.
나시노키사
그 길로 문옥주는 헌병대에 끌려간 뒤 다음날 대구에서 기차에 태워져 만주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하지만 이영훈은 문옥주가 끌려갔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헌병에 잡혀갔다고 했지만,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합니다. 어머니나 오빠의 승낙 하에 주선업자에 끌려간 것을 그렇게 둘러대었을 뿐입니다. - <반일 종족주의>에서
하지만 이영훈은 근거를 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위 문장의 바로 앞에 "문옥주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습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7~8세의 문옥주는 이웃집을 다니면서 동냥을 하였습니다"라는 두 문장을 배치했다. 가난 때문에 문옥주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으리라는 생각을 독자 스스로 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영훈은 문옥주가 성노예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그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말했다. 아래 글 속의 '전차금'은 선금이다. 그리고 '원'은 '엔'으로 읽어야 한다.
문옥주는 1943년 8월부터 저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짐작건대, 그 전에는 전차금을 상환하느라 돈을 모으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금은 1945년 9월이 마지막이며 총액은 2만 6551원이었습니다. - <반일 종족주의>에서
1943년 당시 일본군 육군 중장의 연봉이 5800엔이었다. 문옥주의 저금 액수는 육군 중장의 4년 6개월치 월급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른 위안부들과 마찬가지로 문옥주 역시 실제로는 돈을 만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류상으로만 금액이 쌓여갔던 것이다. 1992년 5월 13일자 <한겨레> 기사 '일제 종군위안부 군사우편저금, 일(日) 저축금 원부서 확인'은 이렇게 말한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당했던 문옥주(68) 씨의 우편저금이 일본 당국의 저축금 원부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실이 11일 확인됐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문씨는 이날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우체국을 방문해 강제연행된 뒤 미얀마(옛 버마)에서 저축했던 군사우편저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 <한겨레> '일제 종군위안부 군사우편저금, 일(日) 저축금 원부서 확인'
이영훈은 "문옥주는 악착같이 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라며 "인기가 많고 능력이 있는 위안부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문옥주가 고수익을 거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돈을 손에 쥐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문옥주가 1992년 시모노세키로 건너가 금전 지급을 청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옥주는 그 돈을 끝내 받지 못했다. 2016년 5월 17일자 <연합뉴스> 기사 '위안부 피해자 고 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는 "문씨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나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1992년으로부터 4년이 경과하도록 일본이 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고래 심줄처럼 질긴 일본이라는 느낌이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이영훈이 말하지 않는 것들
이영훈은 문옥주가 성노예가 아님을 입증하고자, 그가 계약이 만료돼 귀국길에 올랐다가 스스로 귀국을 보류하고 위안부 생활을 좀더 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위안부의 성격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합니다"라면서 "위안부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계약이 만료됐다', '스스로 귀국을 보류했다' 등등의 표현에 접하다 보면, 위안부 생활이 자발적 선택의 결과였던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영훈이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를 근거로 위의 결론을 내렸지만, 실제로 그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문옥주가 귀국 허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패망해가는 데다가 미얀마에 대한 공습이 심해서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문옥주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벌인 조작극의 결과였다.
손님으로 오는 군의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다. '귀국하기 위한 증명서가 필요한데요. 손에 넣을 수 없을까요?'라고. 그러자 그 군의관은 내가 폐병이 났다는 진단서를 써주었다. 군의 중좌와 소좌 두 사람의 서명으로 진단서에 '기침을 하면 가끔 피를 토함'이라고 써주고는 '당신이 너무 건강해 보이면 거짓 진단서인 것이 들통나서 내 목이 날아가니 꼭 병자처럼 행동해요'라고 당부했다.
-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에서
병사들과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위안부가 폐병에 걸렸다면, 부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문옥주가 귀국허가를 받은 것은 가짜 진단서로 일본군을 속였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자유선택을 허용해준 결과가 아니었다.
그리고 문옥주가 귀국을 포기한 것은, 책에 따르면 선박을 타기 직전 대합실에서 깜빡 졸다가 아버지의 환영을 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금 가는 길이 위험하니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 전에도 공습 전에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계시를 해준 일이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이때도 귀국을 포기했던 것이다. 실제로 문옥주가 타려고 했던 배는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됐다.
성노예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문옥주가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간 것은 그가 자유인임을 보여주는 증표가 아니다. 위험을 피하려면 그 길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