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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제가 <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임승수님의 책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를 읽고 나서 입니다. 제가 처음 올린 글이 '인프라 없는 무상보육... 워킹맘은 서럽다'였는데요. 글에 맞는 사진이 선택되고, 편집해 둔 '생나무(지금의 실시간글)' 상태를 보고 채택이 될 것 같아 기대감이 가득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어요. 그때 임승수님이 직접 댓글로 응원을 해주기도 했어요.
21년 차 직장인으로 조직생활의 처세술도 아니고, IT 개발자로서, 금융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노하우도 아닌 육아가, 무명의 제 삶이 오마이뉴스에 기고만 했는데도 책이 된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서 매우 뿌듯합니다.
블로그에 남긴 기록이 책의 근간이 되기는 했지만 책과 기사는 차원이 다른 글쓰기였습니다. 계약을 했으니 제대로 된 책을 쓰고 싶어서 송숙희 선생님의 책교실에서 공부까지 했습니다. 글쓰기 공부를 통해 많은 노하우를 전수받았음에도 막상 내 책의 목차 끝에 도달하는 일은 늘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더군다나 중간에 편집자님의 출산으로 1년간 출간이 미뤄지는 일도 있었어요. '혹시 편집자님이 복직을 못하시면 책 출간은 불가능하겠다'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는데요. 출산 후 복직하는 일은 엄마의 의지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부모가 회사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돌봄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워킹맘이라는 이름은 가질 수 없습니다.
다행히 약속대로 돌아오신 편집자님의 응원과 재촉에 힘입어 원고를 쓰고 절반을 덜어내 다시 쓰는 과정을 거쳐 책 <워킹맘을 위한 초등 1학년 준비법>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을 쓰는 기간 동안에는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2016~2017년에는 '70점 엄마'라는 연재기사도 썼고, 2018년에는 몇 명의 시민기자들과 함께 워킹맘들의 사는 이야기 시리즈를 써보자고 제안까지 해주셨는데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제 머리와 감정은 한계가 있어서 기사와 책이라는 서로 다른 톤 앤 매너의 글을 동시에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2014년 11월 30일 첫 기사를 시작으로 그간 저는 오마이뉴스에 총 103개의 글을 보냈습니다. 이중 기사로 채택된 글은 84개였고, 2017년 여름에 출간 계약을 한 이후 2018년에는 8개, 2019년에는 1개로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오마이뉴스 기고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계형 워킹맘에 학부 전공이 수학과 컴퓨터인 이과형 인간입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아무도 제가 이과의 정반대편에 있는 글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첫 글이 기사가 되니까 정말 기고만장해서 글만 올리면 다 기사가 될 줄 알았더니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2014년 11월 첫 기사 채택 이후 몇 번의 실패를 겪고 시민기자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포기할까 고민하려던 찰나, 7개월 만에 두 번째 기사('직장맘의 쌍둥이 초1 준비 프로젝트', 2015.6) 채택이 이뤄집니다. 이후 한 달에 많게는 네댓 번, 적게는 한두 번씩 기사를 위한 글쓰기를 했습니다.
두 번째 기사가 발행되고 몇 번의 채택이 반복되면서 당시 제 글을 편집했던 김지현 기자가 "(기사가 되는 글쓰기에 대해) 이제 감 잡으셨죠?"라고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이후 오마이뉴스에서 "이런 주제로 글을 써주세요~"라고 청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청탁을 받고 쓰는 원고는 100% 기사로 채택이 됐고요.
책 출간을 마쳤으니까 한동안 멈춰 있던 오마이뉴스에 다시 기고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간 아이들도 컸고, 저의 상황도 몇 년 전과는 엄청나게 큰 변화가 있었거든요. 한참 까칠하게 육아와 워킹맘의 삶을 바라보던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 쓰고 싶은 글의 색깔도 달라졌죠.
오마이뉴스 최은경 편집기자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이란 연재기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이 일을 하다보니 수많은 시민기자들이 스쳐 지나간다'라고 썼습니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아지지 않는데요. 그때그때 겪는 삶의 색깔에 따라 오마이뉴스와 결이 맞는 글을 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면서 각자 살아가기 때문이겠죠.
어떻게 보면 저 역시 지금까지는 제 버킷리스트의 하나인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써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책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나의 삶, 아이들의 삶, 이웃들의 삶에 전과 다른 시선을 두고 귀를 기울이며 글을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무명의 나, 육아같이 평범한 일상을 글로 써도 될지, 그런 글이 책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고 두려우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까칠하기만 한 제 삶도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지금 이 순간부터의 제 삶, 제가 쓰는 글들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함께 한다면 남은 제 삶의 순간들도 다시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추가해 봅니다.
워킹맘을 위한 초등 1학년 준비법
이나연 (지은이),
글담출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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