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회장이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은 회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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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회장이다. 다수의 동대표가 회장을 지지하면 아파트는 그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은 회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물론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인 회장은 서로 업무를 부당하게 간섭할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관리소장의 임면권은 사실상 회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사권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쥐고 있는 자치관리방식은 당연히 그렇고 위탁관리방식이라고 해도 관리회사에 압력을 넣어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까닭에 관리소장은 결국 회장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경비원과 미화원도 마찬가지다. 경비용역회사, 청소용역회사 선정도 결국 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결정한다.
물론 관리소장이 회장을 자기 아래 두는 경우도 간혹 있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어떤 아파트의 경우에는 관리소장이 어리숙한 동대표들을 구워삶아서 자기 맘대로 아파트를 주무르고 있었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다양한 방법을 써서 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다.
문제는 아파트 관리에 있어서 회장은 비전문가라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가 제대로 되려면 전문가인 관리소장이 안정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지금의 구조하에서는 관리소장이 전문성을 발휘하면 '슈퍼 갑'이라 할 수 있는 회장과 갈등을 겪고 쫓겨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구조하에서 관리소장은 회장이 공사·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 뒷돈을 받는 걸 안정적이고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행정적 뒷받침을 하는(물론 이 과정에서 관리소장은 자기에게 피해가 없도록 조치할 것이다) 역할에 머물기가 너무 쉽다.
더구나 아파트 관리에서 전문가인 관리소장은 임기가 보장이 안 된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전문성 발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관리소장의 임기가 평균 1년이 채 안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관리소장 입장에서는 적당히 대충하다가 또 다른 아파트로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관리는 부실해지고 건물상태는 나빠진다.
유명무실한 내부·외부감사
그렇다면 비전문가인 회장이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때론 관리소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장치, 즉 감사제도를 두면 되지 않겠냐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감사제도는 존재한다. 하나는 외부회계감사다. 공동주택관리법은 1년에 1번 이상씩 외부회계감사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감사인은 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다. 그러나 이것도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감사인을 선임할 권한을 감사대상인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감기관이 감사인을 선임할 권한이 있으면 감사인이 제대로 감사할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감사인인 회계법인은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원하는 대로 맞춤형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오히려 문제를 정직하게 지적하면 다음 해 감사인 선정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모든 아파트는 이렇게 만들어진 감사보고서를 행정기관에 보고하고 행정기관은 '적정'이라는 감사 결과를 사실로 간주한다.
노원구의 회계부정도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생긴 것이다. 9억 원 상당의 관리비를 빼돌린 것이 발각되자 경리 책임자와 관리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해서 기사화된 이 아파트도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았지만, 감사 결과는 언제나 '적정'이었다. 회계법인은 관리사무소가 제출한 자료만을 토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회계법인이 제출한 '적정' 보고서를 노원구에 보고했고, 노원구는 '부적정'이 아니므로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또 하나는 동대표 중에 입주민에 의해서 선출된 '동대표 감사'에 의한 내부감사가 있다. 동대표가 하는 내부감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한 사항을 관리사무소가 제대로 집행하는지, 회계처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감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개한다. 그러나 아파트마다 차이가 있지만, 동대표 감사의 역량은 현저히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서류를 볼 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관리소장이 보여주는 자료만 보고 설명에 의존하게 된다. 더구나 감사보고서도 관리사무소가 작성해 준다. 요컨대 대한민국 아파트에서 비리와 부패를 잡아내는 감사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리부실은 결국 본인에게 손해인데 입주민은 왜 무관심한 걸까? 단순히 귀찮고 바빠서일까? 또 입법부·행정부·사법부는 국민의 70%가 거주하는 아파트 관리문제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내놓지 않고 이렇게 방치시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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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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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70%가 사는 아파트, 이렇게 허술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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