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형할인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카트>.
명필름
정규직이란 것은 신분인가
아웃소싱을 하지 않는 경우, 그 하찮고 귀찮은 일을 사내에서 누군가가 꼭 하긴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정규직 직원들이 나눠서 하는 것이 맞다. "이 무슨 천지개벽할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고정관념 역시 되짚어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정규직'이라는 것은 신분인가? 설사 좋은 학력과 스펙, 높은 입사 경쟁률을 뚫은 실력까지 있다고 하더라도 정규직이 된 순간 신분이 높아져서 다른 사람을 차별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직장에 안정적으로 오래 다닐 수 있게 됐다는 것뿐이다.
오래 다닐 사람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더 편한 사람, 세세한 부분까지 소통이 가능한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 정규직 직원 입장에서도 오래 다닐 것이기 때문에 더 애사심을 가질 수 있다. 회사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동료들을 위해 희생하는 자세로 자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하찮고 귀찮은 일이 생겼다면 정규직이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은 어떤 경우에 채용하라는 말인가? 답은 이렇다. 지속 고용을 할 수 없는 업무에 특화된 사람이 필요할 때만 채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영미권 기업들을 주로 상대하는 무역회사가 있다고 하자. 대부분 직원들은 영어에 능통하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스페인 문화권에 팔 수밖에 없는 물건을 떠맡았다. 이 물건을 제 값에 다 팔아야만 회사는 적자를 면할 수 있다. 그런데 당장 사내에 스페인어 능통자가 없다. 그렇다고 그 인력을 정식 채용할 수는 없다. 그 물건을 다 파는 데 1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스페인어권과 무역을 할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면접을 거쳐서 스페인 유학을 준비 중인 사람이 1년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그가 첫 출근을 했을 때 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스페인어 어디서 배우셨어요?", "스페인 어디로 유학갈 예정이신가요? 저도 언젠가 여행가 보고 싶은데, 부럽네요." 등등 관심을 표하며 예우할 것이다. 그리고 본래 예정돼 있던 스페인어 관련 업무만 하도록 안내할 것이다.
누구도 그 사람에게 "계약직이시죠? 오늘부터 저희 사무실 난 화분에 물 주시고요. 이런저런 잡일들 눈치껏 도맡이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1년 후 관련 업무를 마치고 퇴사할 때, "계약이 연장될 줄 알았는데 억울하다"고 할까? 처음부터 계약 연장에 대해 회사도, 당사자도 기대가 없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 "언젠가 스페인 가면 놀러가도 되죠?", "그럼요." 하는 얘기를 나누며 동료들과 기분 좋게 헤어질 것이다.
'엘리트'의 특권은 '편하게 일 하는' 특권?
이제 다시 되짚어 보자. 한국 사회의 여러 직장들마다 생기는 계약직 채용에서의 잡음은 무엇 때문인가? 직군에 따라, 채용 형태에 따라 사람을 '차별'할 수 있다는 인식과 관행 때문이다. 말로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할 뿐, 우리는 특정한 경로로 '자격'을 얻은 사람은 신분이 높고, 그렇지 못 한 사람은 신분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이 하기에는 덜 중요하고 하찮은 일에 비정규직을 쓴다"는 그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왜 우리 사회에는 그런 관행, 인식이 생겨났을까? 가부장적인 문화, 남존여비 사상,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문화 등의 영향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인식이다.
<20대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가 명문대 학력에 부여되는 '자격'이 불평등을 강화하고, 격차를 강화하는 핵심이라고 지적한 것을 보면 이는 분명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어디보다 한국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영향이 더 큰지, 경성제국대학 출신만 제한적으로 고위직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일제 강점기 영향이 더 큰지는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를 잘 해서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라면 사회적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유독 강하다.
문제는 그 특권이란 것이 '더 중요한 위치에서 열정적으로 일 해서 성취를 누리고 사회에 기여할 특권'이라기보다는 '꼭 중요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승진 기회와 정년을 보장 받으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고 휘하의 직원들이 노력한 결과를 자기 공로로 삼아도 되는 특권'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 그리고 정부 기관들조차도 '승진 기회가 보장된 엘리트 직군'을 따로 뽑아 왔다.
경제가 성장하던 시절에는 그 외의 직군 사원들에게도 일정한 시험 등 절차를 거치면 승진하거나 직군을 전환할 기회가 좁게나마 열려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엘리트 직군으로 입사한 사람들보다는 한참 늦게 뒤따라가야 했지만, 직원들 스스로도 '나는 명문대를 나오지는 못 했으니까'라고 자조하면서, 그 정도 기회라도 감지덕지 했다.
그런데 저성장이 '뉴 노멀'이 되면서 몇 가지가 달라졌다. '엘리트 직군'에 부여되는 보장과 특혜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승진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제 한 직장 내에서 비정규직은 어떻게 해도 계속 비정규직이다. 마치 전근대 사회에서 신분을 바꿀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조직에서 혹시나 하고 성실하게 일 하는 것보다는 오래 걸리더라도 '9급 공무원'과 같은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훨씬 낫다. 차별받지 않는 직군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