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네 개짜리 냉장고도 있고, 홈바가 달린 것도 있고, 화면도 달린 최신형의 냉장고들이 머리를 스친다. 무엇보다 웬만한 것들은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냉장고를 선뜻 '내가 사줄게'라고 말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에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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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냉장고를 바라보며 엄마는 말했다.
"하루 종일 돌아가느라 쟤도 얼마나 피곤할까? 언제 샀나 기억도 안 나는데, 지금까지 잘 돌아간다."
10년 가까이 집 한구석을 변함없이 차지하고 있는 사물에 정을 주는 엄마의 모습이 재밌고 따뜻해 보였다.
"엄마. 이거 냉장고 오래됐잖아. 새 걸로 바꾸고 싶어?"
"됐어! 고장도 안 났는데 뭘 바꿔. 요즘에는 문도 많이 달렸던데, 나는 널찍하니 위아래 두 칸짜리가 젤 좋더라."
문 네 개짜리 냉장고도 있고, 홈바가 달린 것도 있고, 화면도 달린 최신형의 냉장고들이 머리를 스친다. 무엇보다 웬만한 것들은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냉장고를 선뜻 '내가 사줄게'라고 말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에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가래떡 먹을래? 냉동실에 얼려놓은 거 있는데."
엄마는 내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이내 말을 돌린다. 냉동실 문을 열어 하얗고 까만 봉지들을 뒤적거린다. 우르르 봉지들이 한꺼번에 떨어진다. 엄마는 뭘 저렇게 고이고이 쌓아 넣어 놓으셨을까. 그중 하얀 봉지 안에 담긴 가래떡을 꺼내 냄비에 물을 붓고 쪄내고 냉장실에서 노란 꿀도 꺼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얘가 우리 집 남바 완(넘버 원)이다! 남바 완!!"
냉장고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는 엄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따라 웃게 된다.
"엄마 남바 완 조금이라도 고장 나면 당장 말해! 내가 10개월 할부로 바꿔줄게!"
나는 '고장'과 '할부'의 조건을 달아 언젠가 새 걸로 바꿔드릴 것을 약속했다.
"오메. 우리 딸이 남바 완이네!"
이번에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엄마. 그제야 가래떡을 꿀에 듬뿍 찍어 한입 베어 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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