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4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와 시민단체 30여 명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햇수로 2년째 공개가 안 되고 있다"며 '정신건강 실태조사 늑장 결정'을 규탄했다.
권우성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2019년 1월 11일 유성기업의 장기간 노사분쟁으로 노동자의 정신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며 유성기업 등에 차별시정 권고 및 사태해결을 위한 의견표명을 결정했습니다. 유성기업은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에도 반론보도청구를 했습니다. 요지는 인권위 조사결과를 보니 유성기업 조합원 중 고위험군은 2.7%에 지나지 않아 심각한 상태는 아니며, 인권위가 위법한 월권을 행사했다는 내용입니다.
유성기업이 인권위 결정을 전한 보도에도 무더기로 반론보도를 청구하면서 잇따라 사측 입장이 기사화됐습니다. 오마이뉴스 <인권위 늦장 결정에 유성기업 노골적 괴롭힘 더 심각> 기사 하단에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관련 법을 위반했고, 정신건강 문제는 정부 발표 기준에 미달했다는 등의 이유로 행정심판을 진행 중임으로 노조원 차별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경희의료원의 정밀조사결과 유성기업 내 우울증 고위험군 비율은 2.7%에 불과하다고 밝혀왔습니다"라는 문구가 실렸습니다.
또, 경향신문 1월 22일 <'노조파괴 컨설팅' 기업들 줄기소 되나>(2019/1/22 이효상 기자)에도 "국가인권위가 경희대 의료원에 의뢰해 검사한 결과 조합원 중 2.7%가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정신질환 1년 유병률' 11.6%보다 낮은 수치"라는 반론 보도가 붙었습니다.
사측에 유리한 극히 일부분만 부각, '왜곡보도'의 방식 그대로
유성기업 측의 '반론'은 자사 노동자들의 우울증 등 심리적 건강 상태가 그리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그 근거로 "경희의료원의 정밀조사결과 유성기업 내 우울증 고위험군 비율은 2.7%"라는 수치도 덧붙였습니다. 이는 인권위 조사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측에 유리한 숫자만 부각한 왜곡입니다.
인권위는 유성기업의 차별 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유성기업 근로자의 건강 상황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권위가 유성기업 소속 노동자 433명에 대해 설문과 인터뷰 등 현장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중 62%가 일상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우울증 징후(59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징후(32명) 등 정신적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분류됐습니다.
인권위는 정신적 질환 징후자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개별 상담을 실시, 12명의 노동자가 자살 사고 등 정신건강 고위험군으로 판단됨에 따라 외부 의료기관의 협조를 얻어 이들에 대한 정밀정신건강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러자 유성기업 사측은 '고위험군 노동자 12명'이라는 숫자만 부각하여 "433명 중 12명, 2.7%에 불과하다"며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체 노동자 중 무려 62%가 '일상적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하고 그 중에서도 '우울증 징후'를 보인 노동자가 59명, '외상 스트레스 장애 징후'를 보인 노동자가 32명이나 된다는 전체적 맥락을 지운 것입니다. 언론의 왜곡 보도에서 흔히 보이는 방식을 유성기업이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겁니다.
또, 인권위가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권위의 관련 결정이 취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결정이 명백히 위법한 결정이라 전제한 유성기업의 주장이 그대로 보도되는 것 역시, '반론 보도'의 근본적 취지에 어긋납니다.
[사측 주장 #3] 유성기업이 제기한 민·형사 소송이 수십 건?
경향신문 1월 24일 <노동자 30% "자살 충동"…손배 가압류는 '희망 압류'였다>에 실린 유성기업 측 반론보도문엔 "회사가 제기한 민·형사 소송이 수십건에 불과하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합니다.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유성기업이 무차별적인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4번 이상 고소를 당한 조합원도 상당수에 이르고, 한 조합원은 17차례나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손잡고 측은 유성기업으로부터 고소고발, 민사소송, 민사가처분을 당한 조합원은 연인원 13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수십 건에 불과하다'는 사측의 주장에 이견이 있는 것입니다.
[사측 주장 #4] 유성기업 직장폐쇄가 정당했다?
대전MBC는 <8년 넘긴 유성기업 사태 "해법 찾아야">(2019/2/14)에서 국가인권위의 시정 권고 결정에 따라 개최된 '유성기업 사태 해결을 위한 진단과 모색 토론회'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기에도 유성기업 측은 반론보도를 청구했고, 대전MBC는 <유성기업 반론보도>(4/11)에서 "2011년 당시 회사의 직장폐쇄는 노조의 장기 불법 파업에 따른 정당한 조치였다"는 반론보도를 게재했습니다.
경향신문도 <유성기업 노동자 또 극단적 선택… 정신건강 실태조사 해놓고 공개 않는 인권위>(2018/12/30)에서 "유성기업은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불가피한 직장폐쇄를 했고, 대법원으로부터 아산공장의 직장폐쇄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반론을 전했습니다.
대법원 "초기 직장폐쇄만 정당, 이후 직장 폐쇄는 부당"
직장폐쇄가 정당했다는 사측의 주장은 대법원판결 중 사측에 유리한 일부 내용만 부각한 일방적 입장입니다. 유성기업 노조는 2011년 5월 18일부터 파업을 벌였고, 회사는 같은 날 아산공장을 직장폐쇄 했으며 5일 뒤엔 또 다른 공장인 영동공장을 직장폐쇄했습니다.
노조는 이같은 직장 폐쇄는 정당성이 없다며 직장폐쇄 기간 받지 못한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2018년 대법원은 ▲파업 초기 아산공장 직장폐쇄는 정당했음 ▲그러나 노조가 2011년 7월 12일 업무복귀 의사를 밝힌 이후에도 직장폐쇄를 유지하는 것은 정당성을 잃음 ▲영동 공장 직장폐쇄는 직장폐쇄 자체가 잘못된 행위 등의 요지로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대법원은 아산공장에 대하여 "피고가 2011. 7. 12. 원고들 노조로부터 2차로 업무복귀 의사를 통지받은 때에는 이전과 달리 아산공장에 대한 직장폐쇄의 상황이 해소되었으므로 (중략) 직장폐쇄를 유지한 것은 원고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방어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공격적 직장폐쇄에 해당"한다며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영동공장에 대한 직장폐쇄는 원고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대항·방위 수단으로서 상당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하면서 사측이 지회 조합원들에게 4억700만 원의 미지급 임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직장폐쇄 개시 자체가 정당하더라도 어느 시점 이후 근로자가 쟁의행위를 중단하고 진정으로 업무복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유지해 공격적 직장폐쇄로 성격이 변질된 경우에는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영동공장 직장폐쇄가 정당하지 않다는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러한 최종 판결에서 어떻게 '직장폐쇄는 정당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요구대로 부당한 직장폐쇄에 대한 미지급 임금의 지급까지 판결한 마당에 사측은 '초기 아산공장 직장폐쇄는 정당했다'는 국소적 내용만 발췌해 전체 결과를 뒤집어 버린 겁니다. 이는 '반론'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유성기업의 '무더기 반론보도 청구'에 제동 건 사법부
유성기업의 반론보도청구를 수용한 사례도 있으나, 언중위 조정을 거부하고 법적 다툼까지 나선 언론사들도 있었습니다. 최근엔 '유성기업 반론보도청구'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지난 16일 유성기업이 레디앙에 제기한 반론보도청구에 대하여 "유성기업 대표이사 유시영 등이 2011년부터 현재까지 금속노조 유성지회에 행한 각종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로 판단돼 형사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이 부분 반론보도청구는 명백히 사실과 달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유성기업의 무더기 반론보도 청구가 부당함을 법원이 확인한 겁니다.
대법원 판례에도 모든 반론보도가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확정 판결한 사례가 있습니다. 2006년 대법원은 "반론보도청구인이 스스로 반론보도청구의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청구하는 경우는 반론보도청구권을 남용하는 것으로 헌법적 보호 밖에 있는 것이어서 반론보도청구권을 행사할 정당한 이익이 없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다50747 판결)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반론보도청구권을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반론보도청구인에게 거짓말할 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유성기업 사측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유성기업은 2011년 '노조파괴'와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 사법부가 그 행위의 불법성을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파괴'를 언급한 기사들을 '반론보도'라는 빌미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이제 그 '반론보도청구'도 부적절하다고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즉 유성기업은 '노조파괴'에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노조파괴'를 숨기고 정당화하려 또 다른 꼼수를 쓰고 있는 겁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반론보도 청구권은 언론사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로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기업이 '언론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라고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유성기업의 반론보도청구 54건 중 고작 1건만 기각한 언론중재위의 대응도 아쉽습니다.
법원이 유성기업의 무더기 제소에 제동을 건 만큼, 언론중재위도 추후에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청구를 기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성기업은 이제라도 인권과 상식에 반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노동자와 언론, 시민들에게 사죄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 아래 회원상호 간의 단결 및 상호협력을 통해 언론민주화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구현에 앞장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공유하기
'노조 탄압' 유성기업, 반론보도청구권 악용해 언론 압박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