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일 우와 지이 우의 소식을 보도한 뉴스 갈무리.
뉴스 갈무리
대만의 한 동성 부부의 이야기
2019년 5월 17일 대만 입법원이 동성 커플에게 혼인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법원 해석 748호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이 법이 시행된 5월 24일 당일에만 수백 쌍의 동성 부부가 탄생했고, 2019년 8월까지 총 1827쌍의 동성 부부들이 혼인 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실은 위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대만에는 법적으로 혼인한 동성 부부가 존재했다. 바로 2012년 10월 혼인을 한 아비가일 우(吳伊婷) - 지이 우(吳芷儀) 커플이다. 이 둘은 모두 태어났을 때 성별은 남성이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2012년 10월 둘이 혼인을 했을 당시 아비가일은 여성으로 성별을 변경한 상태였고 지이는 법적 성별이 남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법적인 여-남 커플로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지이 역시 여성으로 성별을 변경하면서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즉 혼인 당시에는 이성 부부였으나 혼인 후 일방이 성별을 변경하면서 동성 부부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자 호적사무소에서는 둘의 혼인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당시 민법 상 동성혼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두 사람은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대만 내정부는 논의를 거쳐 2013년 8월 둘의 혼인을 유지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이 둘은 동성혼 법제화 이전에 법적으로 혼인을 한 동성 부부가 되었다.
트랜스젠더 동성 커플, 그리고 혼인
흔히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곤 한다. 가령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하면 으레 남성을 좋아하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성별인지 인식하는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과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성적·정서적으로 끌리는지를 나타내는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이면서도 동성애자인 사람들도 충분히 존재하고 또 그 수도 적지 않다. 2014년 성소수자 3000여 명을 조사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249명중 자신을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51.6%에 달했다.
그런데 이렇게 적지 않게 존재하는 트랜스젠더 동성 커플들은 혼인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을까? 아직까지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한국 상황에서 이것이 어렵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일어나는 상황은 더 복잡하다. 법적으로 이성혼만이 가능하다고 할 때의 성별은 법적인 성별이지 성별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 커플이 혼인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이 여러 사례가 있을 수 있다.
1) 법적 이성 커플, 성별정체성 동성 커플 : 성별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은 동성 커플임에도 법률에 따라 혼인이 가능하다.
2) 법적 동성 커플, 성별정체성 이성 커플 : 성별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이성 커플임에도 법률상 동성인 이유로 혼인을 할 수 없다.
3) 법적 동성 커플, 성별정체성 동성 커플 : 성별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 둘의 커플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은 혼인을 할 수 없다. 다만 대만의 사례처럼 커플 중 1인이 성별정정을 할 경우 법적으론 이성커플이 되어 혼인이 가능하다.
4) 법적 이성 커플, 성별정체성 이성 커플 : 유튜버 '콩팥부부'와 같이 성별정정한 트랜스젠더 남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둘은 문제없이 혼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법적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의 특성으로 인해 혼인과 관련된 셈법은 매우 복잡해진다. 그에 따라서 1)처럼 본인과 주변 모두에게 동성 부부로 인식되고 살아감에도 법률혼을 할 수 있거나, 반대로 2)처럼 이성부부로 살아감에도 법률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트랜스젠더 커플의 존재는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한정시키는 현행 제도에 질문을 던진다. 동성혼을 금지함으로써 지키고자 하는 사회의 성별규범이 도대체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