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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싶으면 이혼하고 오라는 대법원

[왜, 동성혼 ③] 트랜스젠더 인권의제로서의 동성혼

등록 2020.02.27 15:11수정 2020.02.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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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3일, 1056명의 동성 커플들이 동성혼· 동성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을 신청했다. 이 사건 진정을 대리하는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가구넷)는 5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진정의 취지 및 혼인평등의 필요성과 의미를 짚어본다. 오래전부터 가족으로 살아온, 가족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가족을 구성할 권리, 유지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재고해 본다. - 기자 말
 
 아비가일 우와 지이 우의 소식을 보도한 뉴스 갈무리.
아비가일 우와 지이 우의 소식을 보도한 뉴스 갈무리.뉴스 갈무리

대만의 한 동성 부부의 이야기

2019년 5월 17일 대만 입법원이 동성 커플에게 혼인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법원 해석 748호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이 법이 시행된 5월 24일 당일에만 수백 쌍의 동성 부부가 탄생했고, 2019년 8월까지 총 1827쌍의 동성 부부들이 혼인 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실은 위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대만에는 법적으로 혼인한 동성 부부가 존재했다. 바로 2012년 10월 혼인을 한 아비가일 우(吳伊婷) - 지이 우(吳芷儀) 커플이다. 이 둘은 모두 태어났을 때 성별은 남성이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2012년 10월 둘이 혼인을 했을 당시 아비가일은 여성으로 성별을 변경한 상태였고 지이는 법적 성별이 남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법적인 여-남 커플로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지이 역시 여성으로 성별을 변경하면서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즉 혼인 당시에는 이성 부부였으나 혼인 후 일방이 성별을 변경하면서 동성 부부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자 호적사무소에서는 둘의 혼인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당시 민법 상 동성혼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두 사람은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대만 내정부는 논의를 거쳐 2013년 8월 둘의 혼인을 유지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이 둘은 동성혼 법제화 이전에 법적으로 혼인을 한 동성 부부가 되었다.  

트랜스젠더 동성 커플, 그리고 혼인

흔히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곤 한다. 가령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하면 으레 남성을 좋아하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성별인지 인식하는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과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성적·정서적으로 끌리는지를 나타내는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이면서도 동성애자인 사람들도 충분히 존재하고 또 그 수도 적지 않다. 2014년 성소수자 3000여 명을 조사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249명중 자신을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51.6%에 달했다.

그런데 이렇게 적지 않게 존재하는 트랜스젠더 동성 커플들은 혼인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을까? 아직까지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한국 상황에서 이것이 어렵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일어나는 상황은 더 복잡하다. 법적으로 이성혼만이 가능하다고 할 때의 성별은 법적인 성별이지 성별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 커플이 혼인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이 여러 사례가 있을 수 있다.


1) 법적 이성 커플, 성별정체성 동성 커플 : 성별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은 동성 커플임에도 법률에 따라 혼인이 가능하다.

2) 법적 동성 커플, 성별정체성 이성 커플 : 성별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이성 커플임에도 법률상 동성인 이유로 혼인을 할 수 없다.


3) 법적 동성 커플, 성별정체성 동성 커플 : 성별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 둘의 커플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은 혼인을 할 수 없다. 다만 대만의 사례처럼 커플 중 1인이 성별정정을 할 경우 법적으론 이성커플이 되어 혼인이 가능하다.

4) 법적 이성 커플, 성별정체성 이성 커플 : 유튜버 '콩팥부부'와 같이 성별정정한 트랜스젠더 남성과 비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둘은 문제없이 혼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법적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의 특성으로 인해 혼인과 관련된 셈법은 매우 복잡해진다. 그에 따라서 1)처럼 본인과 주변 모두에게 동성 부부로 인식되고 살아감에도 법률혼을 할 수 있거나, 반대로 2)처럼 이성부부로 살아감에도 법률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트랜스젠더 커플의 존재는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한정시키는 현행 제도에 질문을 던진다. 동성혼을 금지함으로써 지키고자 하는 사회의 성별규범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무지개 깃발 휘날리는 퀴어퍼레이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지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처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무지개 깃발 휘날리는 퀴어퍼레이드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지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처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권우성

혼인과 자신답게 살 권리,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사회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대만의 아비가일-지이처럼 동성혼을 한 트랜스젠더 커플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일어나기 어렵다. 현재 성별정정에 관한 기준을 설정한 대법원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혼인 중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대만과 달리 한국에서는 혼인한 트랜스젠더 커플 중 1인이 성별정정을 하려면 둘은 이혼을 해야만 하고, 이혼 후 성별정정을 마치면 둘은 동성 커플이 되어서 혼인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성별정정에 있어 혼인 중이 아닐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2006년 대법원 예규 제정 당시부터 비판이 있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1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며 해당 규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만약 현재 혼인 중에 있는 성전환자에 대하여 성별정정을 허용할 경우 법이 허용하지 않는 동성혼의 외관을 현출시켜 결과적으로 동성혼을 인정하는 셈이 되고, 이는 상대방 배우자의 신분관계 등 법적·사회적 지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현행 민법 규정과 오늘날의 사회통념상 현재 혼인 중에 있는 성전환자는 전환된 성을 법률적으로 그 사람의 성이라고 평가할 수 없고, 그 결과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정정도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 대법원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
 
결국 대법원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체성에 따라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개인의 삶에 있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엔 자유권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2017년 이러한 양자택일의 위법성을 인정하여, 혼인하지 않은 사람만 출생증명서 상의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법률이 혼인과 사생활의 권리,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해당 결정에서 자유권위원회는 성별정정을 위해 이혼을 강요당한 트랜스젠더 여성 진정인의 호소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호주에서 성별재지정은 합법이고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는 법적으로 자신의 성별을 인정받고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또한 진정인은 성별재지정의 결과 그녀가 사랑하는 여성배우자와 매일 혼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국가에 의해 인정된 것이다. 진정인의 출생증명서를 이러한 합법적인 실체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을 거부할 명백한 이유가 없다.

- 유엔 자유권위원회 개인진정 결정(CCPR/C/119/D/2172/2012)
 
자신답게 살 권리와 혼인 간의 불가능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과 개인의 구체적 삶을 존중하고 이를 합법적 실체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 이 중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상관없이 평등한 혼인을
 
법적 성별이 배우자와 달라 혼인신고는 가능한 상황이지만, 트랜지션을 진행 중인 트랜스젠더로서 추후 성별정정에 불이익이 있을 것과 아웃팅 등의 염려로 혼인신고는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 11월 13일 가구넷의 진정에 참여한 한 트랜스젠더 커플은 위와 같이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어려움 없이 혼인을 하지만, 누군가는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하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혼인을 망설여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정부가 외치는 '시기상조',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다양한 성별·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혼인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리기 위하여, 하루라도 빨리 동성혼 법제화를 비롯하여 평등한 가족구성권을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한희는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활동가입니다.
#동성혼 #혼인평등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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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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